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내년 6월에 국내에 출시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벌써부터 언론과 전문가들은 넷플릭스의 진출이 국내 미디어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소식이 이같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 기업이 그동안 미국의 방송시장에 미친 영향과 소비자들에게 보여준 혁신적인 시도들 때문일 것이다. 넷플릭스는 현재 미국의 최대 케이블TV 사업자인 컴캐스트보다 더 많은 유료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달리, 아직 국내 업계에는 사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가장 큰 원인으로 낮게 형성된 국내의 유료방송 이용요금을 든다. 1만원이 못되는 요금으로도 케이블TV나 IPTV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에 대해 매력을 느끼기 어렵고, 서비스에 대한 지불의사도 낮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 원인을 더 들 수 있다고 본다. 현재 국내에서는 주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업자들이 방송사업자나 통신사업자들이고, 이들이 굳이 변화나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못하는 것도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사업에 필수적인 요소는 콘텐츠와 네트워크이다. 그런데 이 둘을 확보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서비스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없는 국내에서는 콘텐츠, 네트워크 중에 어느 하나도 보유하지 못한 사업자가 시장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국내 주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의 대부분은 지상파 방송사, 케이블TV 사업자, IPTV사업자 또는 그 계열사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자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요소를 기반으로 경쟁사들을 적당히 견제하고 또 그들에게 견제를 받으면서 작은 규모의 시장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고품질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만 안정적인 네트워크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IPTV 사업자(통신사업자)는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나 이용자들에게 고품질의 콘텐츠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이 사업자들은 굳이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사업에 적극적인 전략을 취하지도 않는다. 자사의 인터넷 동영상 이용이 늘어나면, 결국 기존 방송서비스의 광고수익이나 가입자 기반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이용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도 그리 만족스러운 수준이 되지 못한다. 고품질의 콘텐츠를 충분히 제공하는 서비스도 없을뿐더러, 그나마 이를 언제 어디서나 안정적으로 시청하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높은 인터넷 이용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2014년에 실시된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이용시간의 대부분(83.9%)이 집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선인터넷 이용요금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안정적인 와이파이(Wi-Fi)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집안에서 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집안에는 막강한 미디어인 지상파방송, 케이블TV, IPTV가 버티고 있다. 콘텐츠도 넉넉하지 않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가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하게 될 경우, 국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혹자는 척박한 국내 미디어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찻잔속의 태풍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하고, 혹자는 국내 미디어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UHD TV 시장이 성장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이 위협적인 진짜 이유는 그동안 이 기업이 보여준 다양한 혁신 사례들 때문이다. 이용자들이 연체료 없이 DVD를 대여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하고, 갑자기 DVD 대여에서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인터넷 사업자로는 이례적으로 동영상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고, 드라마 시리즈의 전편을 한 번에 공개했던 사례들 말이다. 그동안 국내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시장이 좀처럼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가 ‘원래 뭘해도 잘 안되는’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국내 기업들의 안일한 시장전략 때문이었는지 이제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승엽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미디어산업진흥부 책임연구원 yeopcp@kc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