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호 한전 부사장이 글을 엮어 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추천의 말’에서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전업’ 글쟁이를 권했다. 글 쓴 사람이나 추천의 말을 쓴 사람이나 한통속으로 감칠맛 난다.
강 전 장관은 박규호의 멘토다. 멘토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은 행운이다. 추천의 말을 강 전 장관에게서 받았다는 자랑을 하면서 박규호가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안다. 그의 눈빛만 봐도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박규호 ‘소담한 생각 밥상’은 사람 이야기다. 사람과의 만남은 그의 중장기 기억장치에 저장된다. 그에게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삶 그 자체다. 가족, 친구, 지인, 상사, 선배는 물론이고 책과 신문이 모든 만남의 대상이다 생각 밥상은 박규호가 만난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기록은 꼼꼼하다. ‘적자생존’이라 쓰고 ‘적어야만 산다’고 풀이한다. 적고 쓰는 게 직업인 기자보다 기록정신이 투철하다.
그는 한전 국제협력부장, 도쿄지사장, 중국지사장 등을 거친 나름 해외통이다. 현지 경영진을 만나고, 음식점 종업원을 만나고, 신문과 책에서 다양한 군상을 만난다.
“지하철에서 신문 보는 친구도 임원 되기는 글렀다.”
도쿄 전력 임원이 그에게 말했다. 박규호를 아끼는 사람이었다. 미리 일어나 준비하라는 경구였다. 그 후 박규호는 25년 동안 니혼게이자이신문을 포함해 여러 신문을 교과서 삼아 읽어왔다. 오리고, 정리하고, 버리고, 재정리하고. ‘꼼꼼함’이 박규호 생각밥상을 만들었다.
밥상에는 한전 부사장으로서 다루기 힘든 역대 한전 사장과 장관의 철학과 처세술을 반찬거리로 올렸다. 한전 비서실장으로서, 한전 임원으로서, 부사장으로서 곁에서 지켜본 그들의 이야기다. 훔쳐볼 만하다. 막걸리 안주로도 그만인 상사에 대한 ‘뒷담화’다. 안병화 회장은 엄숙하지만 로맨티시스트로, 강동석 전 장관은 ‘일 잘하는 멋쟁이’, 조환익 사장은 ‘소통의 달인’으로 표현했다.
“제가 비록 계약직(?)이지만, 한전이라는 직장을 2년여 다녀 보니 어느 부서도 대강대강 놀면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분야는 없는 것 같습니다. (중략) 만년 꼴찌 한전배구단이 일을 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꿈도 못 꿔본 9연승을 하고 말았습니다.”
소통의 달인 조환익 사장이 자필로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글 일부다. 어찌나 감동했는지 인간 박규호는 이 글을 5페이지에 걸쳐 소개했다. 그것도 ‘중략’과 ‘하략’을 수시로 사용하면서.
생각 밥상은 사람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소통과 배려를 자주 꺼낸다. 말 한마디에 스스로 무너지고 배려하지 못해서 좌절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는 성장했지만, 과연 성숙한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직장, 연애, 학교, 국가문제 역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갈등을 시작하는 것도 사람이고, 해결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래도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인격적 성숙을 박규호는 좋아한다. 중요한 유산은 물질이 아닌 근면·성실·정직·용기 등 정신적 가치라고 말한다.
박규호는 잡식성이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도 무언가를 적었다. 그 내용은 언젠가 숙성되어서 그를 성장시킬 것이다. 마치 밥상에 예상치 못한 푸성귀가 오르듯. 오늘 저녁 밥상이 풍성해지겠다.
박규호 지음. 매경출판 펴냄. 1만5000원.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