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불공정 하도급, 뿌리 뽑힐까

중소기업 중요성은 ‘9988’로 표현된다. 우리나라 기업 99%가 중소기업이고, 고용인원 88%가 중소기업 종사자라는 뜻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 335만4000개 기업 가운데 335만1000개가 중소기업이고, 1500만 고용인원 가운데 1300만명이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슈분석]불공정 하도급, 뿌리 뽑힐까

우리 경제 뼈대인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으로 불공정 하도급 거래 개선이 우선순위로 꼽히는 이유도 통계가 뒷받침한다. 중소기업 가운데 하도급업체는 50.3%에 달한다. 하도급업체 매출액 중 원사업자 납품액 비중은 83.2%다. 중소기업 경쟁력이 곧 중견·대기업 경쟁력인 셈이다.

이런 구조가 오히려 중소기업 발목을 잡았다. 과도한 중견·대기업 의존이 중소기업을 약자로 만들었다. 원사업자의 횡포로 중소기업은 경쟁력이 약화됐고, 이는 부메랑이 돼 우리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불공정 하도급 근절에 발 벗고 나선 이유다.

◇원사업자 횡포 줄었지만…갈 길 멀어

박근혜 대통령은 “중소 사업자가 대·중소기업 불공정 행위 개선을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그동안 수차례 강조했다. 공정위는 산업별 실태 조사와 제재를 확대하고 관련 입법 과제를 추진했다. 그 결과 불공정 하도급 거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부터 제조·용역·건설업종 10만 사업자를 대상으로 2013년 하도급거래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 위반 혐의 업체 비율은 29.2%로, 2012년 37.8%보다 줄었다. 2010년 44.9%에 달했던 법 위반 혐의 업체 비율은 이듬해 32.4%로 12.5%포인트 줄었지만 2012년 37.8%로 반등한 바 있다.

서면 미발급(구두 발주)은 2012년 14.5%에서 9.3%로 5.2%포인트 감소했다. 어음할인료 미지급률(4.8%→4.3%), 지연이자 미지급률(4.7%→3.9%), 어음대체결제수수료 미지급률(4.2%→3.5%)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당한 발주취소는 7.4%에서 4.0%로 줄었고, 원재료 가격변동에 따른 대금조정 협의기한 미준수 비율도 4.8%에서 2.5%로 감소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공정 하도급거래가 개선됐다”고 대답한 비율이 전년보다 12.3%포인트 늘어난 84.3%를 기록했다. 2013년 63.3%였던 현금성 결제 비율은 8.0%포인트 늘어난 71.3%로 나타났다. 하도급대금 인상요청에 원사업자 수용을 경험한 중소기업은 3.0%포인트 늘어난 66.4%를 보였다.

불공정 거래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뿌리를 뽑기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불공정 행위가 많고, 새로운 유형의 횡포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행위유형별 위반 혐의 비율(조사대상 가운데 위반 혐의가 있는 기업 수)은 △서면 미발급 9.3% △어음할인료 미지급 4.3% △부당 발주취소 4.0% △지연이자 미지급 3.9% △어음대체결제수수료 미지급 3.5%에 달한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적정 수준보다 현저하게 낮게 하도급 대금을 받은 기업이 조사대상 중 8%에 달한다. 기술자료 요구, 지연이자·어음할인료 미지급 등 횡포도 일부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동반성장이 강조되고 관련 법이 제정·시행되며 전반적으로 여건은 개선되는 분위기”라면서도 “음성적 불공정 행위는 여전히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적 감시, 법 실효성 제고 ‘절실’

공정위는 감시망을 대대적으로 넓히고 있다. 최근 자동차·건설 업종을 대상으로 현장조사에 나섰다. 6월에는 기계 업종까지 범위를 확대한다. 앞서 의류, 선박 부문 조사를 수행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1일 대구와 부산을 방문해 “우리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이 부당한 대기업 횡포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6월에는 광주와 대전을 방문해 중소기업 현황을 직접 듣는다.

조사는 하반기와 내년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장조사에서 적발한 불공정 행위를 분석해 향후 보다 넓은 범위로 조사를 확대·발전시켜 간다는 게 예년의 조사 방법과 차별화된다”며 “하도급 대금 미지급 원인이 ‘못 받아서 못 주는’ 형태로 밝혀진다면 조사 범위를 윗 단계로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활동이 활발하면 일시적으로 원사업자 횡포가 줄어들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불공정 하도급은 오랜 기간 이어진 관행이라 감시가 느슨해지면 금세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일회성 조사에 머무르지 않고 상시 감시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불공정 하도급을 막기 위한 법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정위는 최근 2년 동안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를 대거 도입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을 부여했다. 불공정 하도급특약, 부당한 판매장려금 수취를 금지했다.

하지만 새로 도입한 제도가 아직 현장에 뿌리 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 법 시행 여부를 알지 못하는 일이 많고, 알더라도 태반은 활용·대응 역량이 부족하다. 일례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적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로 시행한 법을 적극 홍보하고, 중소기업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장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지속적 점검과 세부 사항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 활동과 불공정 하도급을 막기 위한 법 도입 자체로도 개선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효과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