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팬택, 이대로 무너지나

[이슈분석]팬택, 이대로 무너지나

국내 3위 휴대폰 제조사 팬택의 청산이 임박했다. 팬택은 26일 지난 9개월간 진행한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신청했다. 법정관리가 중단되면 청산 외에는 대안이 없다. 1991년 설립해 벤처 신화를 이끌어온 팬택이 24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팬택은 한때 LG전자를 제치고 국내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기업과 경쟁으로 인한 가격경쟁력 저하, 하이엔드 스마트폰 위주 사업 전략 고수 등으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됐다.

팬택이 사라지면 500여 협력업체, 약 7만여명 생계가 어려워진다. 20여년간 개발한 4000여 특허와 기술력은 뿔뿔이 흩어진다. 부품, 생산, 조달 등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생태계가 붕괴돼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휴대폰 생태계 변화도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벤처신화’ 팬택을 바라보던 젊은 창업자의 꿈이 사라진다.

◇더 이상 시간 끄는 것 의미 없어

팬택은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2007년 한 차례 워크아웃을 겪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4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수익성 악화로 지난해 3월 2차 워크아웃이 시작됐다. 그리고 5개월 후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동통신사는 팬택 채권 출자전환은 거부했지만 채무 상환을 2년간 유예했다. 팬택과 팬택 협력사는 대통령을 향한 호소문까지 발표하며 팬택 살리기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들 요청에도 협력업체 줄도산은 현실화됐다. 세 차례에 걸친 매각 절차는 모두 무산됐다. 결국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게 기업회생절차 폐지 신청 이유다.

팬택 관계자는 “법원이 폐지 신청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3주 정도가 걸리는데 그때까지는 법정관리가 계속 진행된다”며 “법정관리가 폐지되면 일반 기업이 되기 때문에 채권이 살아나고 결국 파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시간을 오래 끌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를 해야 할 때가 됐다고 털어놨다.

◇법원, 파산선고 가능성 커

파산법에 따르면 법원이 회생절차를 신청한 기업에 대해 파산선고를 할 수 있는 경우는 세 가지다. 회생절차 개시 신청 기각 결정, 회생계획 인가 전 폐지(임의적 파산선고), 회생계획불인가 결정 등이다. 팬택의 경우는 임의적 파산선고인 회생계획 인가 전 폐지가 결정될 전망이다

법원은 채권자를 비롯한 관계인 의견을 취합해 최종 파산을 결정한다. 만일 법원이 파산 선고를 하지 않으면 팬택은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법원은 팬택의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인정해 세 차례에 걸쳐 매각을 시도했다. 하지만 업계는 팬택 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있어 파산 선고가 유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말 기준 팬택 부채는 약 1조원, 자산은 2685억원으로 추정됐다. 파산이 선고되면 팬택이 보유한 공장과 보유 특허 등 자산을 매각해 채무 비율대로 채권자가 나눠 갖는다. 규모가 큰 회사이기 때문에 청산 절차에도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팬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과감한 판단 아쉬웠다

승승장구하던 팬택을 파산위기까지 내몬 결정타는 지난해 이동통신사 영업정지였다. 하지만 팬택의 위기는 이미 3년 전부터 시작됐다. 팬택은 휴대폰 시장 점유율 2위까지 올라서면서 프리미엄폰 전략을 고수했다. 대기업과 경쟁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팬택에는 부품 조달부터 유통망까지 이르는 생태계가 없었다. 대기업과 달리 외부 업체 의존도가 높아서 원가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금력 부족, 브랜드 강화 등을 이유로 프리미엄폰 전략을 계속 이어나갔다. 결국 과감히 중저가폰 위주로 전략을 선회해야 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업계 관계자는 “팬택은 2012년 정도에 1~2년 앞을 내다보고 냉정하게 판단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국내 시장 점유율 2위, 세계 시장점유율 7위, 뛰어난 기술력 등이 팬택을 자만하게 만든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저가폰 판매를 늘리면 수익성이 떨어져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팬택에는 이를 위한 자금적 여유가 없어 쉽게 중저가폰 전략을 펼치기도 어려웠다.

◇팬택, 앞선 기술력으로 소비자 매료

벤처 1세대로 불리는 팬택은 1991년 박병엽 전 부회장이 창업했다. 이듬해 무선호출기(삐삐) 사업을 시작했고 1997년에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 판매도 시작했다. 같은해 거래소에 상장했다.

2001년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린 팬택은 2000년 이후 국내외 마케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003년 국내 휴대폰 시장 3위에 올라섰다. 2005년엔 SK텔레텍을 인수하고 미국과 일본 시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일본 시장에서는 2007년 밀리언셀러를 기록할 정도로 좋은 성과를 거뒀다.

팬택은 ‘세계 최초’ 타이틀을 여러개 보유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세계 최초 지문인식 스마트폰인 ‘베가 LTE-A’를 개발했고 세계 최초 원형 3D 게임폰도 만들었다. 원적외선 폰, 블루투스 DMB 폰 등 새로운 시도와 도전정신이 팬택을 명품 휴대폰 제조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 네티즌은 “언제나 앞선 기술과 디자인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팬택이 사라진다면 정말 아쉬울 것”이라며 “내가 사용했던 팬택 휴대폰은 대부분 다 좋은 제품이어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팬택 연혁 자료:팬택>


팬택 연혁  자료:팬택

<팬택 워크아웃 일지 자료:업계종합>


팬택 워크아웃 일지  자료:업계종합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