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1990년대 들어 5대 재벌기업 간 과당경쟁과 과잉투자로 몸집을 키워오다 1997년 국가적인 IMF 경제위기를 맞아 구조조정 터널에 빠져들었다.
현대자동차는 1998년 공장가동률이 52%로 떨어지고, 잉여인력이 1만8000여명에 달하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에 노조는 파업과 점거농성 등으로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정치권마저 회사 측의 불가피한 상황을 이해해 결국 당시 총 직원 20%가 넘는 1만여명이 구조조정됐다. 또 10% 정도 임금 하락도 감내하게 됐다.
기아자동차는 1998년 공장가동률이 44%로 하락하자 법정관리체제로 들어갔고, 그해 12월 현대차에 인수됐다. 이 과정에서 3000명이 자진 사퇴하고 2800여명이 명예퇴직하는 등 전체 직원 30%가 넘는 인력이 구조조정됐다. 그리고 용역파견직 활용 등 고용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추진되고 노조도 경영층의 인사권 인정 등 상당한 양보를 했다. 이로써 2000년 2월 법정관리가 해제됐다.
삼성자동차는 IMF 위기 직후 대우전자와 빅딜이 무산되고 1999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당시 공장가동률은 겨우 10%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며, 급기야 4월 르노그룹에 인수됐다. 이 과정에서 전 직원 약 30%에 해당하는 1900여명 인력이 구조조정됐다.
대우자동차도 IMF 위기 이후 해외 매각이 추진됐지만, 부실 규모가 계속 확대돼 당초 협상하던 포드가 인수를 포기하고 이후 GM과 협상도 노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부도 처리됐다. 법정관리 하에서 사측 회생 계획에 노조 반발이 지속됐으나 결국 전 직원 20% 수준인 3700여명 인력이 구조조정됐다. 또 경영권 간섭조항 삭제 등 단체협약 개정도 이루어졌으며, 2002년 1월 지엠대우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쌍용자동차는 1997년 공장가동률이 55%에 불과하자 1998년 1월 대우차가 인수했으나 1999년 대우그룹과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800여명이 감원됐다. 이후 정부 공적자금 지원으로 회생 기틀이 마련되면서 2005년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쌍용차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후 법정관리 체제 속에서 2009년 구조조정에 따라 전 직원 37%에 해당하는 2600명 이상이 정리해고 됐다.
이처럼 3개 회사가 외국계로 넘어가고 수만명 인력이 구조조정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세계 5위 생산국으로서 위상을 구축하고 어느 정도 정상화 단계에 와 있다.
하지만 위기를 계기로 합리적, 협력적 노사관계로 이미 오래전에 전환한 유럽, 미국, 일본 자동차 산업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쓰라린 추억을 잊어버리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강경하고 대립적인 노사 관계 패러다임 속에서 세계 최고 임금과 세계 최저 생산성을 보이고 있다.
또 지난 5년간 통상임금 부담까지 겹치면서 인건비가 50% 증가했는데, 엔화로 환산한다면 100% 상승한 것과 같아 국산 자동차가 내수뿐만 아니라 세계시장 곳곳에서 밀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전개되는 글로벌 경쟁에서는 어느 기업의 생존도 보장하지 못한다. 국내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고 미래를 함께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18년 전 아픔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루빨리 임금 안정과 고용 안정의 빅딜을 도모해 합리적이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노사관계를 마련해야 할 역사적 시점에 와 있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yonggeun21c@kam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