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SIA는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매출지원 등 특혜를 베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반도체협회(WSC) 참가국인 한국·일본·대만·유럽 국가의 동조 여부가 변수다.
세계반도체협회는 지난달 한국, 미국, 중국, 대만, 일본, 유럽 등 6개국이 참가하는 회의를 열고 반도체 관세 철폐, 지식재산 보호, 위조 칩 차단 등을 의제로 내걸었다.
눈에 띄는 것은 미국반도체산업협회를 중심으로 ‘중국 정부가 시장 중심 원칙을 지켜야 하며,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는 방침을 제시한 것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에 지원하는 정책이 공정 무역에 어긋난다는 게 미국 측 주장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중국 정부가 천문학적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 자금을 조성해 자국 기업을 육성한다고 지적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팹리스(반도체설계), 파운드리 분야 기업에도 이 같은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에 의존하는 반도체를 국산화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전략이다.
중국 업체가 자체 개발한 반도체를 내수 시장이나 해외에 판매하면 매출 7~10% 수준을 정부가 보전해준다. 정확한 지원 비율은 기업마다 달라 더 큰 비중으로 정부 자금을 받는 기업도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일부는 20~30% 수준의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반도체 업계는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이 해외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지원 자금을 등에 업은 현지 기업이 가격 체계와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반도체 회사 관계자는 “중국 기업은 제품을 마진 없이 팔아도 정부 지원으로 버틸 수 있으니 이들과 얼마나 경쟁할 수 있겠느냐”며 “기술 수준이 많이 좋아진데다 가격까지 공격적으로 제시하니 한국 기업이 현지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중국 기업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정부로부터 강하게 입단속을 받아서 지원 자금 규모가 얼마나 크고 어떤 기업이 수혜를 입는지 전체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미국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지만 WSC에 참가하는 다른 국가 동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에 진입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서 1조원대 과징금을 부과 받은 퀄컴처럼 곤란한 일도 발생할 수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현지 기업을 지원하는 내용을 입증할 공식 문서가 있어야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데 정황만 있고 공식 근거 자료가 없다”며 “세계 반도체 무역을 원활히 이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국 이해관계도 챙겨야 하기 때문에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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