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석가탄신일 연휴에 아무 생각 없이 경춘 고속도로를 타려다가 그만 차량 사이에 갇혔다. 차가 막혀 있는 동안 주위의 차들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대부분의 차량은 젊은 아빠 엄마들이 아이들을 태우고 춘천 쪽으로 가는 차량들이었다. 나이든 아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마 애들도 좀 크면 부모 따라 다니기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이 연휴를 맞아 가족 단위로 놀러 가는 차량들이었다. 왜들 연휴나 주말에는 꼭 애들을 데리고 놀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왜 주말이면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 시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버지는 즐거워서 하는 건가 아니면 그래야 한다고 해서 의무적으로 하는 건가? 자녀는 커서 부모와 같이 놀러 갔던 추억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정말 부모의 고생과 뒷바라지를 기억하고 고마워할까?
가족이 가장 중요한 행복의 원천임을 우리 모두 다 안다. 그래서 인생에서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가족을 가장 의사결정 기준의 상위에 놓는다. 당연히 가족과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 그러나 가족의 행복을 위해 주말이면 집안일 도와주고 자녀와 가급적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한창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 젊은 날에? 지금 당장에 만족하고 안주하면 미래가 위험해진다.
대부분의 중년 가장은 고민이 많다. 직장에서는 위아래로 끼어 있고, 애들은 커서 곧 대학교 들어가야 하고, 대학 졸업한 자식은 취직도 못하고 있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집안 살림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년 가장은 앞으로 최소한 40~50년을 더 살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직장인이 60세 정년퇴직 때까지 회사 다니기는 힘들다. 수명은 연장됐는데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기간은 더 줄고 있다. 그러니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지금 고민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40·50대 중년 가장들도 10, 20여년 전에는 바로 지금 막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생기 넘치는 30대 초반의 가장들이었다. 이런 고민에 빠진 가장 입장에서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왜 이런 고민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직장 생활 열심히 했고, 취미생활도 했고, 일과 생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고, 주말에는 애들 데리고 전시회도 가고 캠핑도 갔었다. 아내와 맛집도 찾아다니고 소문난 관광지는 빠지지 않고 다녔다. 나름 최선을 다해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내가 그동안 뭘 잘못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희망보다는 좌절이 더 커지는 것인가? 화도 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은 당신들은 잘못 없다 이게 다 기성세대 때문이라고도 했다. 나의 불행, 나의 좌절이 내가 아닌 당신들 때문이라고 하는 순간 사람들은 이 사회에 적대감을 갖게 된다. 묻지 마 범죄도 그래서 생긴다. 그러나 그런 적대감이 내 문제를 푸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언론에 끔직한 가족해체 기사들이 자주 나온다. 그 중에 많은 내용이 가장의 실직, 사업 실패, 자녀 가출 그리고 이혼, 양육 포기와 같이 참담하다. 시각을 노년층으로 돌리면 노인 학대, 노인 빈곤, 독거노인, 노인자살, 요양원 번창 등 나이 들어가는 것이 겁날 정도다.
만약 가정이 튼튼하게 버텨 준다면, 부부 사이가 돈독하다면,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가 끈끈하다면 이러한 가정 해체 문제는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는 만큼 이러한 실패 사례들은 더욱 가장을 두렵게 만든다. 당연히 가정을 이루는 순간부터 가정을 지키고 애들을 잘 키우고 자기들의 노년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그러한 준비도 가급적 젊었을 때 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해야 한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정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 오늘을 투자해야 한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면 우리 아버지들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중동으로 월남으로 훌쩍 떠났다. 자기의 꿈을 위해, 가족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가족을 떠나 자기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그러한 희생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산다. 그 희생도 가급적 젊었을 때 해야 한다. 늙어서 희생을 한다고 하면 효율도 없고 보기도 딱하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도 많은 젊은 가장이 정신없이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이들은 사실 부인에게서 주말에 집안일 돕지 않는다고, 애들과 같이 놀아 주지 않는다고, 가족이 같이 놀러 가지 않는다고 핀잔을 듣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년, 30년 뒤에 어느 쪽 가장이 더 가정적이고 애들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젊은 날 가족과 함께 시간을 쓰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써야 한다. 가장이 자기 자신의 꿈과 미래를 향해 전력투구를 하면 오히려 가정의 미래와 가족의 행복을 지킬 힘을 가질 수 있다. 애들이 클 때는 불만이 많겠지만 커서는 오히려 아빠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연휴, 주말에는 가족과 꼭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말고 집에서 아빠와 애들이 같이 책 보고 공부하는 그런 재미없는 주말을 보내기 바란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 했다. 길바닥에서 시간 허비하지 말고 집에서 독서로 공부하고 여행하는 그런 젊은 아빠가 됐으면 한다. 이것 역시 가족을 진정으로 위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