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방송장비 시장에 몰려오는 IP기술과 가격파괴 쓰나미

[기고]방송장비 시장에 몰려오는 IP기술과 가격파괴 쓰나미

‘NAB 2015’에 다녀왔다. 미국방송사업자연합회(NAB)가 주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방송전문 전시회로 159개국 1700여 업체가 참여했다. 4K UHD는 상용화와 품질 경쟁 단계에 와 있으며 8K UHD도 성능 확인 수준의 제품 전시가 있었다. ETRI가 출품하고 기술혁신상까지 받은 ATSC 3.0 표준장비 시연과 HDR 영상 서비스 기술 시연 등 다양한 신개발 제품이 전시됐다. 이미 다른 매체에 신속히 NAB 관련 정보는 보도됐으므로 여기서는 다른 시각에서 참관 소감을 피력하고자 한다.

먼저 IP가 가져올 방송콘텐츠 제작 환경 변화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동축 케이블로 전송되던 영상 신호가 초고속인터넷으로 전송되는 시대가 확실히 열렸음을 실감했다. 인터넷망에 물리는 비디오 스위칭이 라우터로 이루어지게 된다면 카메라를 포함한 비디오 소스가 위치한 거리, 장소에 상관없이 다양한 소스로 영상프로그램 편집이 가능해져 획기적인 영상제작 환경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남은 과제는 인코딩에 몇 초 걸리는 점이 라이브 방송에 장애가 되고 있지만 최근의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한다면 1~2년 내에 초 단위로 단축될 게 틀림없다.

둘째는 방송장비 가격 파괴가 가져올 시장 변화다. 호주 블랙매직 디자인사는 다른 회사 장비 가격의 20분의 1에서 10의 1로 제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상식 수준을 넘은 가격 파괴다. 어떻게 해서 가능할까.

이 회사 최고경영자가 펀딩전문가라 했다. 내 추측으로는 개별 소자로 만들던 회로 기판을 통째로 ASIC화함으로써 제조, 시험 비용을 절감하고, 장비 소형화에 따른 가격 절감을 실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ASIC화를 위한 초기 투자가 클 텐데 그 비용을 펀딩으로 모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면 초기투자 비용을 어떻게 회수할 것인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방송장비 구매자 층 확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기존 방송장비 시장은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사업자 위주여서 비교적 한정된 고객을 상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방송시스템에도 도입되면서 채널이 IP어드레스로 지정되게 돼 사실상 무한대 채널로 확대되고, 이에 따라 개인과 소규모 그룹 등이 독자 채널 확보가 가능해지고 있다. 이렇게 소규모 그룹이 채널을 확보했다 해도 지금까지는 고가의 방송장비를 구매할 수 없어 본격적인 방송서비스를 하기 어려웠다.

바로 이 시장을 블랙매직디자인이 보고 선제적인 가격파괴를 시행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고객층은 기존 방송사업자가 구매하던 가격대의 장비 구매는 어렵지만 10분의 1 이하로 가격이 떨어진다면 충분히 구매할 수 있어 추후 폭발적인 방송장비 구매고객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앞에서 언급한 방송프로그램 제작 워크플로에 IP기술이 깊숙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방송장비회사는 퇴조하고, 인터넷 장비 업체가 신흥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한정된 고객을 상대로 비교적 가격 책정에 여유를 가졌던 기존 방송장비 업체와 달리 인터넷 환경에서 여러 계층의 고객을 상대로 치열한 가격 경쟁을 해 온 인터넷 장비 회사의 마케팅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할 것인지가 큰 과제다. 이러한 시장 흐름 쓰나미가 국산 방송장비 업체에도 도도히 다가오고 있음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등 현명한 지혜를 동원해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한국전파진흥협회 강철희 상근부회장(chkang@rap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