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메르스와 네트워크 확산

[칼럼] 메르스와 네트워크 확산

어느 회사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고객 200명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이들에게 몇 종류의 와인과 음식을 제공하자 2~3명씩 그룹을 형성해 와인을 마시며 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곧 파티장 안에는 60 ~ 70개의 형성된 그룹을 볼 수 있다. 이들 고객 중 한 명에게만 라벨이 붙지 않은 병에 든 와인이 값비싼 최고급 프랑스 와인이라고 귀뜸을 해주고 이 정보는 새로 사귄 사람들에게 만 공유하도록 요구한다면 파티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정보가 전달 되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하는데 5분이 걸린다고 하면 199명을 만나서 이야기 하는 시간은 무려 17시간이나 소요된다. 그러나 이정보가 200명에게 확산되는 시간은 30분이면 충분하다. 각각의 그룹 멤버들은 서로 이동하며 또 다른 그룹에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발견 26일만에 감영자 145명 격리자 4,856명 사망자 15명으로 확산되며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메르스의 전파 과정은 네트워크의 확산 과정과 다르지 않다. 우리사회가 아주 짧은 경로의 초연결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특정한 정보나 유행 등의 전파는 때에 따라 빠르게 확산 될 수도 있다.

1994년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 유행했던 `케빈베이컨의 6단계`라는 게임이 있다. 케빈베이컨은 우리에겐 영화 `풋루즈(Footloose)`로 알려진 배우로 20년 동안 약 5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 게임의 규칙은 영화에 함께 출연한 관계를 1단계라고 하고 다른 배우들이 몇 단계 만에 케빈 베이컨과 연결되는가를 찾는 게임이다. 예를 들면, 덴젤워싱턴은 톰행크스와 `필라델피아`에 출연했으며, 톰행크스는 케빈베이컨과 `아폴로13호`를 함께 찍었으니, 덴젤워싱턴은 두 단계가 된다. 이 게임은 네트워크의 ‘여섯 단계의 분리’라고 하는 `좁은 세상` 이론과 연관된다. 즉,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 알고 있는 6명의 사람들의 사슬에 의해 연결된다". 스탠리밀그램은 1967년 실험을 통해 임의의 두 사람을 잇기 위한 연결 수의 평균값은 5.5번임을 증명했다.

어떤 영화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광고와 홍보를 해도 흥행에 실패하는 반면 어떤 영화는 광고도 없이 입 소문을 타고 천만 관객을 돌파 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제품은 TV광고를 해도 인기가 없는 반면 어떤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맛있는 식당이 새로 문을 열면 처음에는 손님이 없다가 일정기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또 언제부턴가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게 된다. 왜 그럴까? 이런 현상들이 바로 네트워크를 통한 확산 현상 때문이다. 네트워크는 온라인 SNS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인 오프라인 연결 관계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사회 연결망을 의미한다.

네트워크 상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영향력자(Influencer)` 또는 `오피니언 리더`라고 한다. 네트워크 상에서 빠른 확산을 위해서는 이들 영향력자를 찾아내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렇게 네트워크 상에서 영향력자들에 의해 정보가 확산되는 것을 `2단계 정보 전달` 이론 이라고 한다. 메르스 확산의 경우에는 수퍼감염자가 바로 네트워크 상의 영향력자에 해당된다. 확산을 방지 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수퍼감염자 생성을 억지하고 차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네트워크 상에서 영향력자에 의해서 특정 정보가 확산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유튜브의 영상 전파 과정을 분석한 연구에서 유명한 인물(영향력자) 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일반인들이 수천만의 사람들이 영상을 시청하게 하는 결과를 이끌어 냈음을 밝혀냈다. 네트워크에서의 확산은 소수의 영향력자 때문이 아니라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특정 정보를 받아들인 이웃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때 발생한다.

이것은 일종의 연쇄반응과 유사하다.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특정한 정보나 경향을 받아들이고 이웃에게 전달되며 이 정보가 지속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어떤 영화가 "재미있다"라고 한다면 그 정보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연쇄반응처럼 전파될 것이다. 네트워크를 통한 확산에는 강한 연결(Strong Tie) 보다는 오히려 약한 연결(Weak Tie)이 더 영향력이 크다. 이런 약한 연결을 통해 비슷한 선호도를 가진 이웃에게 정보가 전달되며 동질화 과정을 거치면서 연쇄반응처럼 한 단계씩 정보가 확산되는 것이다

메르스의 확산과정도 마찬가지이다. 감염자로부터 일대일로 접촉을 통해서 전파되어 감염이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약한 연결을 통한 확산은 일시에 대량의 감염자를 발생시키기 어렵다. 즉, 현재의 메르스 확산은 크게 걱정할 정도의 확산력을 가진 상태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초기에는 미비한 수준에 머물다가 일정한 임계점이 넘어가는 순간 무섭게 확산될 수도 있다. 따라서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의 메르스 감염 정도는 네트워크 확산 측면에서 봤을 때 아직은 아주 경미한 초기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감염자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격리 조치 등 확산 방지 노력만 꾸준히 한다면 조만간 국내에서 메르스를 완전하게 퇴치할 수 있을 것으로 사려된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필자소개/안병익

국내 위치기반 및 소셜기술의 대표주자다. 한국LBS산업협회 이사, 한국공간정보학회 이사, 한국텔레매틱스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연세대 컴퓨터과학 박사로 KT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1998년 사내벤처를 시작으로 2000년 포인트아이㈜를 창업해 2009년까지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0년 위치기반SNS 기업 씨온을 창업해 사용자참여형 맛집정보서비스 ‘식신 핫플레이스’를 운영하고 있다.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