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열리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사물이 연결돼 지능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능형 서비스를 만드는 핵심은 반도체다. 최근 인텔, 아바고, NXP 등 굵직한 시스템반도체 기업이 대형 인수합병을 시도한 것도 이 같은 흐름 때문이다.
우리 시스템반도체 현주소는 어떨까. 관련 분야 선진국인 미국 대비 기술력은 70~80%에 수준에 불과하다. 디스플레이구동칩, CMOS이미지센서(CIS) 등 일부를 제외하면 갈 길이 멀다. 신규 인력은 줄고 청년 창업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본지는 시스템반도체 인력 구조의 문제점과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정책을 3회에 걸쳐 집중 점검한다.
“반도체 설계를 전공한 석·박사급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전자공학 전공뿐만 아니라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이공계 전공자도 채용합니다. 심지어 인문·사회 분야 전공자를 채용해 6개월 정도 반도체 설계를 가르칩니다. 중소 팹리스가 이 분야 석·박사급을 찾아 헤매는 구인 대란이 매년 심해지고 있습니다.”
한 중소 반도체 설계(팹리스) 대표의 하소연이다. 대기업 선호 문화, 국내 팹리스 시장 침체, 사례를 찾기 힘든 청년창업, 기술 투자를 꺼리는 투자 문화가 겹치면서 신규 인력이 좀처럼 유입되지 않고 있다. 청년 유입이 적고 기존 전문 인력은 대기업으로 빠져나간다. “개발할 아이템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는 한숨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사한 국내 시스템반도체 설계 인력 신규 수요는 연간 2800명 수준이다. 매년 대기업이 1500명, 중견·중소기업은 1300명가량 신규 인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기업이 확보하는 신규 인력은 수요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은 필요 인력의 30%를 확보하는 데 그친다.
중견·중소 팹리스에 취직하는 신규 인력은 연간 380명이다.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소수 대기업은 매년 700명의 신규 반도체 설계 인력을 채용한다. 대학과 긴밀히 연구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며 석·박사 과정 학생이 졸업하기 전부터 자사로 끌어들인다. 성적이 우수하고 연구 결과가 좋은 인재에게 장학금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에 중견·중소기업은 비용과 투입 인력 측면에서 대기업만큼 공을 들이기 힘들다. 기존 전문 인력을 지키기도 힘들다. 중소기업에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나 전력반도체 같은 주요 시스템반도체 분야 개발 경험을 쌓은 전문 인력은 대기업 스카우트 1순위 후보다.
중소기업이 칩을 개발해도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제품과 경쟁하기도 벅찬데 당장 국내 대기업에 밀려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대학도 반도체 설계 인력 양성에 고군분투 중이다. 대학의 반도체 설계 인력 양성을 지원하는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 예산이 매년 줄어드는 것은 새로운 설계 인력 배출이 감소하는 것과 일치한다.
IDEC는 전국 대학의 반도체 설계 인력을 교육·지원해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 1995년 설립했다. 산업부와 반도체 기업들의 지원으로 출발해 초기 4년간 연평균 약 25억원을 집행했지만 지난해 예산은 8억원에 불과하다. 올해도 이와 비슷한 8억원 수준이다.
반도체 설계를 전공하는 인력이 줄고 정부와 대기업 관심이 끊기면서 이 분야 교수진도 줄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IDEC 모델을 벤치마킹한 대만이 연간 2000명 수준의 석박사급 설계 인력을 배출하는 것과 달리 현재 IDEC 과정을 거친 학생은 연간 300명 수준에 불과하다.
박인철 IDEC 소장(KAIST 교수)은 “신규 인력 유입이 계속 줄어드는 것은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되는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는 “벤처로 출발한 팹리스가 성공하고 재창업을 하는 성공 모델이 이어져야 하는데 이 고리가 끊어져버려 젊고 우수한 인재가 이 시장에 뛰어들 리 만무하다”며 “전략적 인수합병으로 창업 성공 사례를 만들어 새로운 인재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표. 국내 시스템반도체 인력 현황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700명 정도는 산업 내 경력사원의 기업이동으로 충당)>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