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방송장비 업체 A사는 지난해 초고화질(UHD) 방송 서비스 론칭을 준비하는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UHD 방송 장비를 공급했다. 이 제품은 UHD 방송 상용화 직전까지 진행된 실험방송에서 기술력과 품질을 모두 인정받았다. 하지만 해당 유료방송 사업자는 UHD 방송 상용화 직전 갑자기 장비 협력사를 A사에서 해외 대기업으로 변경했다.
#B사는 최근 지상파 방송사와 공동으로 실시간 UHD 방송 특화된 장비를 개발했다. 일본·미국 대기업 제품과 비교해도 탁월한 성능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정작 공동개발에 참여한 지상파는 1~2대에 불과한 실험용 샘플 이외 수량은 구매하지 않았다. B사는 다른 방송사를 고객으로 유치하려 했지만 해당 지상파가 판매 수익 배분을 요구하고 있어 진퇴양난이다.
떠오르는 UHD 시장에 국산 방송장비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방송장비 업계는 국산 장비보다 해외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업계 관행과 일부 방송사 ‘갑질’ 탓에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취약한 산업 인프라가 정부의 ‘방송장비 국산화’ 정책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현재 국산 방송장비가 국내 방송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31% 수준이다. 지난 2008년 15%에서 16%포인트(P) 상승했다. 공인·사설 방송사가 디지털 방송을 송출하기 위해 국산 모니터, 문자발생기를 도입한 덕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방송사는 인코더, 카메라 등 핵심 제작 장비는 대부분 외산 제품에 의존한다”며 “중소업체와 공동 개발한 UHD 방송장비도 신뢰성을 이유로 구매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래부는 최근 진행한 ‘정보통신기술(ICT) 정책 해우소’에서 방송장비 산업 육성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미래부 방침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수십년간 고착화된 산업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요가 한정된 시장 특성 탓에 몇몇 방송사가 일방적 원가 조정, 라이선스 비용 요구, 계약 갱신 거부 등을 ‘업계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악용하기 때문이다.
정부 개발과제로 개발한 신제품은 현장에서 신뢰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구매를 꺼린다. 중소기업은 국내에서 거둔 실적이 부족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도 어렵다. 미래부에 따르면 현재 방송장비 업체 평균 매출액은 40억원, 평균 직원 수는 27명에 불과하다.
한 방송장비 업체 대표는 “제품 신뢰성을 개선하기 위해 현장 의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가 공영방송·공사 등이 일정 비율의 국산장비를 사용하도록 규정하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으면 외산 장비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