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주년을 맞는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기념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최근 두 나라 사이에 형성된 냉각 기류를 볼 때 기념행사도 의례적인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 50년은 물론이고 역사를 통틀어 갈등과 대립을 반복했다. 한편으로는 교류와 협력 속에 이익을 취하고 상호 발전했다.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이 어떤 발걸음을 내디딜지에 따라 앞으로 50년은 또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다. 경쟁자이자 동반자로서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50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깝고도 먼 나라’
우리나라와 일본 관계를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 수식어다. 비단 과거 역사와 정치적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와 산업 분야에도 들어맞는다.
일본은 주요 외국인투자유치국 가운데 하나다. 지난 2012년 일본의 한국 투자 규모(신고액 기준)는 45억4100만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최대 투자국 미국(36억7400만달러)을 웃돌았다.
집계 가능한 누적 투자액을 살펴보면 일본의 한국 투자액은 382억7300만달러(1962~2014년)에 달한다. 비슷한 기간(1968~2014년) 한국의 일본 투자액은 64억1000만달러로 6분의 1 수준이다. 우리가 일본에 가지고 간 돈보다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돈이 확연히 더 많다. 외국인투자액 유입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생각하면 지난 50년 가까이 일본이 우리 경제 발전에 일조한 측면이 있다.
한일 수출입 규모를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많이 투자한 만큼 많은 돈을 벌어갔다. 지난 50년간 한국의 대일본 무역적자는 5000억달러가 넘는다. 연간 적자액은 1965년 1억3000만달러에서 지난해 215억달러로 늘어났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일본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연간 흑자를 거두지 못했다. 한국 제조업이 가전·반도체·디스플레이 등에서 강자로 올라섰지만 대일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는 역부족이었다.
2014년 우리나라 전 산업의 세계 무역특화지수는 0.043으로 경쟁우위다. 대일 무역특화지수는 -0.251로 경쟁열위다. 50년간 한국이 일본과 경제 협력 또는 경쟁에서 유리했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최근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사회적 관계 악화가 경제 교류·협력에도 직간접 영향을 미쳤다.
한일 교역규모는 줄어드는 추세다. 우리나라 일본 수출은 2012~2014년 3년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수입도 같은 기간 나란히 감소했다.
2010년 361억달러까지 치솟았던 대일 적자가 지난해 215억달러로 내려왔지만 전체 교역이 감소한 탓에 빛이 바랬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2012년 이후 양국 간 무역·투자가 줄어드는 등 산업협력이 ‘축소균형’으로 갈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대일 무역적자 감소를 마냥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악화된 양국 정부 관계와 달리 경제계는 상호 협력 기반 확대 요구가 높다. 두 나라 기업인은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제47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미래 50년을 향한 한일 관계를 구축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공동 성명에서 ‘미래 50년을 향한 동반성장·공동번영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목표 아래 △창조경제 협력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지지 △제3국에서 협업 확대 △금융·환율·투자 정책 공조 △정보통신기술(ICT) 협력 확대 등을 다짐했다.
정부도 물밑에서는 일본과 경제 협력 재개 방안을 마련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머지않아 한일 관계가 다시 복원되지 않겠는가”라며 “그때에 대비해 양국 협력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일 재무·통상장관회의가 2년여 만에 열리는 등 물꼬를 트는 모습도 보였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처럼 일본 정부가 획기적으로 역사관을 재정립하지 않는 한 두 나라 사이에 긴장감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양국이 발전을 거듭하는 한 경제·산업 분야 경쟁과 협력도 계속될 것이다.
50년 전 경제 협력 출발선에서 한국이 한참을 뒤처져 있었다면 새로운 50년은 두 나라가 비슷한 지점에서 나란히 출발한다. 동반성장을 통한 ‘윈윈’ 전략을 구사하기 용이하다. 경쟁자이자 동반자로서 시너지를 내도록 전향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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