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신경행동 관련 치료제 개발은 세계적으로 매우 어려운 분야다. 특히 간질(뇌전증)은 현재 원인 치료가 불가능하고, 대안으로 항경련제, 근이완제 등을 병원에서 처방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환자유전체 정보분석기술(NGS/GWAS) 발달로 인해 간질 원인유전자 규명이 가능해졌고, 간질 연구와 치료용 신약개발의 세계적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했다.
국내 연구진이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간질과 지적장애 원인유전자를 발견하고, 병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혀 주목된다. 유전자가위기술을 이용한 질환모델동물로 제브라피쉬와 쥐 제작에 성공해 향후 관련 치료제 개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충남대 생물과학과 김철희 교수팀은 미국 그린우드 유전학연구소와 공동연구를 통해 간질과 같은 운동장애 증상의 원인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중추신경계에서 신경흥분을 조정하는 신경전달물질 ‘감마 아미노뷰티르산(GABA)’ 연합신경의 조절기능 이상으로 중추신경계가 지나친 신경흥분 상태(뇌성마비)가 되고, 간질 등 운동장애 증상이 나타남을 밝혔다.
연구를 통해 X염색체와 관련해 간질 및 지적장애 증상을 가지는 희귀유전질환 ‘마일스-카펜터 신드롬(MCS)’ 원인유전자를 밝히고, 세계 최초로 그 분자기전을 규명했다. 그린우드 연구소와 공동으로 MCS환자 가계를 대규모 환자유전체 정보분석기술로 분석해 MCS 후보유전자를 발굴했다. 또 MCS 후보유전자에 대한 생물학적 검증을 위해 세계적인 유전자 녹아웃 신기술인 유전자가위를 활용해 질환모델동물 마우스와 제브라피쉬 제작에 성공했다.
질환모델동물과 수백 종의 유전자마커를 이용한 기능분석 연구에 성공해 발병 원인이 간질 발병기전 최상위에 위치한 GABA 생성에 있음을 밝혔다.
GABA 신경조절 이상은 결과적으로 운동신경에도 영향을 미쳐 근력저하증, 관절구축, 척추측만증 등 발달장애를 동반한다. 눈 운동신경 조절에도 문제가 생겨 안구운동실행증, 외사시, 안검하수증, 입과 턱관절의 비정상적 운동으로 인해 침을 많이 흘리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GABA 연합신경세포에서 시작한 신경조절 및 중추신경계 이상은 최종적으로 지적장애로 이어진다.
세계적으로도 간질 연구를 위한 유전 질환모델동물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번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녹아웃 동물모델은 국내 간질 치료제 연구개발에 보급하고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앞으로 간질 관련 전문임상연구진, 치료제 개발기업과 협력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신규 간질 분자타깃 발굴, 동물모델에 대한 임상과 신약개발 차원에서의 빠른 검증, 실전에서의 활용 등을 모색할 계획이다.
김철희 교수는 “간질의 근본원인이 GABA 신경전달에 있다는 사실을 유전자 수준으로 규명한 것”이라며 “새로운 개념의 간질 치료제 개발뿐 아니라 유사한 운동장애인 근위축증, 파킨슨병 기전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폐증 환자의 3분의 1이 간질을 동반하므로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연구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국내에서 본격적인 자폐연구를 위해 최근 관련 연구자 모임인 ‘자폐프리즘연구회’를 구성했다. 연구결과는 유전학 분야 국제학술지 ‘인간분자유전학(Human Molecular Genetics)’ 8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