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라져버린 우리민족
『삼국지』위지동이전에 따르면, 우리민족은 기원후 3세기까지 북으로는 아무르에 이르고 남으로는 요동에 이르는 만주대평원과 한반도를 차지하고 살았던, 중국 북방 민족들 가운데 가장 크고 강한 민족이었다.
그런데 10세기에 발해가 멸망하고 고려가 건국되었을 때의 우리민족의 영토와 인구는 주변 다른 민족에 비하여 갑자기 줄어 있었다. 3세기까지 우리 선조들에 비하여 인구수가 매우 적었던 주변 민족들, 예를 들어, 거란과 숙신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10세기에는 먼저 거란이 만주대평원과 중국 하북지방을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를 통치하는 요(遼)를 건국했고, 12세기 초에 그들이 오늘날의 키르키스탄이 있는 서쪽으로 떠나자, 그들의 지배하에서 만주 동쪽에 거주하던 숙신의 후예 여진족은 그 거대한 영토에 금(金)나라를 세웠다.
3세기까지만 해도 숙신은 인구수가 우리민족에 비하여 너무나 적어, 스스로 부여에 찾아와 신하가 되었고, 부여는 그들에게 무거운 조공을 매년 바치도록 명령하였으며, 말을 듣지 않으면 여러 차례 정벌하였다. 그런데 10세기에는 오히려 우리 선조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 만주대평원을 저들에게 내어주고, 한반도 청천강 이남의 좁은 지역만을 차지하는 약소민족으로 돌변하였다.
어떻게 역사가 이렇게 진행되었을까? 여러분은 이런 우리민족의 역사가 이해되십니까? 우리민족의 영토가 왜 이렇게 줄어들었을까요? 역사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했던 그 시대에는,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 살던 민족이 척박한 땅에 살던 민족보다 인구수에서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3세기까지 동북아에서 가장 비옥하고 넓은 땅을 차지하고 살았던 우리민족이 거란이나 숙신에 비하여 인구수가 더 폭발적으로 늘어야 했고, 국력도 몇 배로 늘어야 했으며, 그 힘을 바탕으로 영토도 훨씬 더 넓어졌어야 했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3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전개된 우리민족의 역사는 정확히 그 반대로 흘렀습니다. 이 시기에 도대체 우리 선조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우리민족은 대규모로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6세기에 쓰인 위서(魏書)나 10세기에 쓰인 구당서(舊唐書)는 우리 선조들이 북쪽 아무르를 향하여 집단으로 사라졌고, 그 이동은 계속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북쪽으로 가서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어디로 갔기에 동북아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집단이었던 우리민족이 10세기엔 소수민족으로 돌변하였을까요?
2. 멕시코에 나타난 우리민족
오늘날 멕시코인들은 흰 옷과 밀짚모자를 매우 좋아하여 즐겨 입고 다닌다. 그들은 그 복장이 자신들의 조상들이 즐겨 입던 전통 의상이라고 하며, 흰 옷을 즐겨 입는 그들 자신들을 ‘백의민족’이라고 말한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의 멕시코 땅에 살던 원주민들은 우리말을 사용했다. 그들은 왕을 ‘모든 백성들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다도안이(Tlatoani)’라고 불렀고, 점쟁이를 ‘모든 것을 맞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다마틴이(Tlamatini)’라고 했으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모든 것을 그린다’는 뜻으로 ‘다그려(Tlacuilo)’라고 불렀다.
그들은 이렇게 말만 우리말을 사용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생활의 모든 면에서 우리민족의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들의 일상생활 풍습도 우리의 옛 풍습과 같았고, 그들의 놀이 풍습도 우리의 전통 놀이 풍습과 같았다. 풍습만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만들어 사용하던 토기까지도 같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민족정신을 ‘얼(ool)’이라고 했다. ‘얼’은 바로 우리의 민족정신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우리들은 ‘조상의 빛난 얼’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남긴 기묘하게 생긴 토기들은 오늘날 우리나라 박물관에 전시된 토기와 비슷한 것들이 많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원래는 아스땅(Aztlan)에 살던 맥이(Mexi)족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민족은 예맥족으로 알려져 있다. 예족은 만주대평원을 중심으로 부여-고구려를 건국했던 선조들이고, 맥족은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살면서 고조선을 건국했던 선조들이다. 맥족 선조들이 고조선을 세웠던 곳이 바로 아사달(阿斯達)이고, 아사달의 고대 발음은 ‘아스다’이다. ‘아스땅’과 거의 같다. 맥족 선조들은 5세기 이후부터 맥이(貊耳)라고 불렸다. 이렇게 신대륙 발견 이전의 멕시코 원주민들, 즉 오늘날의 멕시코인들의 선조들은 우리의 선조들과 하나에서 열까지 완벽하게 같았다.
3. 맥이족의 모습
● 남자들의 모습
멕시코 원주민들은 외모는 우리 선조들과 같았다. 남자 어른들은 상투를 했고, 검은 갓 모자를 썼으며, 외출할 때는 흰 두루마기를 입었다. 우리 선조들은 길을 갈 때 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이런 습관까지 같다.
● 여자들의 모습
삼국시대 우리 여인들의 머리 모양은 다양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모양이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은 형태이고, 옷은 한복이었다. 신분이 높은 여인들은 봉잠(鳳簪, 봉황새 모양의 비녀)을 했고, 각종 장신구를 머리에 꽂았으며, 여인은 머리가 풍성해야 아름답다는 생각에 가체(가체, 빠진 머리를 땋아 머리 장식으로 사용)를 하기도 했고, 옷은 색동저고리를 입었다. 특히 저고리의 가슴 부분에는 둥글거나 네모진 큰 문양을 넣었다.
신대륙 발견 이전의 멕시코 원주민 여인들도 이런 한복을 입었고,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았으며, 봉잠과 장신구, 그리고 가체까지 했다. 또 그들이 입던 한복 저고리에도 네모진 큰 문양이 있었다.
4. 생활풍습
신대륙 발견 이전의 멕시코인들은 생활풍습에서도 우리민족 전통 풍습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집 앞에 금줄을 쳐서 한동안 외부인의 출입을 금했고, 제사를 지낼 신성한 장소에도 금줄을 쳤다. 여인들은 아기를 업어 키웠고, 젖을 줄 때는 ‘찌찌(tzitzi)’라고 말하곤 했다. 머리를 감을 때에는 푸른 풀을 으깨어 그 즙을 물에 섞어 머리를 감았는데, 이것은 우리 옛 어머님들이 창포에 머리 감던 풍습과 같다. 또 음식을 먹을 때, 미리 손톱으로 조금 집어 주변에 던지곤 했는데, 우리의 고수레 풍습과 같다. 그들은 이 풍습을 ‘다다살리((Tlatlasali)`라고 불렀는데, 이것도 우리말로서 ’다 함께 살리‘라는 뜻이다.
우리민족은 예부터 달 속에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1924년 윤극영은 이런 우리 민족 전통 신앙을 ‘반달’이라는 노래로 지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라고 불렀다. 그런데 멕시코-마야 원주민들에게도 바로 이 신앙이 있었다. 그들도 달 속에 토끼 한 마리가 있다고 믿어, 아래와 같은 그림을 남겨두었고, 또 토끼를 ‘토치(Tochi)’라고 했다. 토치는 토끼의 우리말 사투리이다.
5. 놀이풍습
멕시코 원주민뿐 아니라 아메리카 전역의 원주민들은 우리민족 고유의 놀이풍습을 그들의 고유 풍습으로 믿고 널리 행하였다. 그들도 윷놀이, 공기놀이, 팽이치기, 널뛰기, 자치기, 굴렁쇠놀이, 연날리기, 고누놀이, 죽마고우놀이, 숨바꼭질, 씨름, 구슬치기를 했고, 심지어는 달집태우기 놀이까지도 했다고 문헌 기록에 나온다.
이 놀이들 가운데 아메리카 대륙에 가장 널리 퍼졌던 것은 윷놀이였다. 그들은 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네 개의 윷가락을 만들고, 원형 혹은 사각형의 말판을 만든 후에, 돌을 말로 사용했다. 윷판에 사용된 돌을 인디언들도 ‘말(horse)’라고 불렀고, 윷가락을 공중으로 던 질 때에는 오른 손에 쥔 윷가락 밑을 먼저 땅에 탁쳐서 윷가락을 고르게 한 후에 던졌으며, 나온 점수가 우리의 ‘모’에 해당하는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오면 ‘좋다(Jouta)’라고 외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나온 점수로 말을 움직였을 때 상대방의 말이 있는 곳에 도착하면, 상대방 말은 잡히게 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고, 각자의 모든 말이 먼저 윷판을 돌아서 집으로 돌아오면 이기게 된다는 것까지, 경기 규칙의 세세한 부분까지 우리의 윷놀이 규칙과 같다.
공기놀이나 숨바꼭질의 규칙도 역시 세세한 부분까지 우리의 놀이 규칙과 같다. 아래는 20세기 초까지 공기놀이를 즐기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모습을 보고 미국 백인들이 기록한 원문과 내용이다. 놀이의 모든 과정이 우리민족 고유의 공기놀이임은 물론이다.
“여자 두 명이 하는 놀이이다. 5개의 둥근 조약돌을 먼저 준비한다. 먼저 하는 여자가 그 다섯 개 돌 가운데 하나를 ‘내 돌’로 골라서, 그것을 공중으로 던지고, 눈은 그 돌을 보면서, 그 돌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손으로 땅에 있는 네 개의 돌 가운데 하나를 집는다. 이렇게 땅에 있는 돌들을 차례로 하나씩 다 집은 후에, 그 여자는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는 한 번에 두 개씩 집는다. 그 다음에는 세 개를 집고 나머지 하나를 집는다. 그 다음에는 땅에 있는 돌 네 개를 동시에 집는다. 여기까지 성공하면, 이긴다. 그 다음 놀이는 더 어렵다. 돌 하나를 선정하여, 앞의 게임처럼 공중으로 던진다. 그리고는 엄지 손가락과 중지 손가락으로 만든 아치(원형 집)-검지는 중지 위에 겹쳐 놓는다- 속으로 땅에 놓인 돌을 밀어서 집어넣는다. 놀이 순서는 첫 번째 놀이와 같다 (즉 처음에는 하나씩 집어넣고, 그 다음엔 둘씩 집어넣고, 그 다음엔 세 개를 한꺼번에 집어넣은 후, 나머지 하나를 집어넣고, 마지막엔 네 개를 한꺼번에 집어넣는다). 세 개를 먼저 집어넣고 나머지 하나를 집어넣어야 할 때, 상대방이돌 하나를 지정하면, 그 돌을 선택한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와 발해시대에 만주대평원에서 사라진 우리민족의 흔적이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매우 적나라하게 남아있다. 특히 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국명에서부터 도시명이나 주(州) 명칭과 같은 많은 지명들이 우리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필자소개/손성태 교수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학교에서 스페인어학 박사학위를 받고, 배재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부터 우리말과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의 연관성을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세계 최초로 아메리카 인디언이 우리민족임을 밝혔다. 저서로는 ‘우리민족의 대이동-아메리카 인디언은 우리민족이다/멕시코 편(2014)’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