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과학향기]세계인이 사랑한 커피의 모든 것

6세기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살던 ‘칼디’라는 양치기는 가뭄이 계속되자 평소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 떼를 몰고 갔다. 그런데 얼마 후 칼디는 한 무리 염소들이 평소와 달리 비정상적으로 흥분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염소들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입 속에 빨간색 열매를 넣고 아작아작 씹는 것을 발견했다. 궁금해진 칼디는 염소들이 먹는 열매를 직접 따먹었다. 잠시 후 칼디는 자신도 마구 춤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인류가 처음으로 커피 효능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KISTI 과학향기]세계인이 사랑한 커피의 모든 것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커피는 아랍으로 전파되면서 본격적인 음료로 개발됐다. 아랍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먹기 시작한 사람은 이슬람교 신비주의자인 수피교도들이었다. 그들은 긴 밤 기도 시간 동안 졸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이후 커피는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됐다. 특히 르네상스시대 유럽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커피 효과에 열광했다고 전해진다. 커피의 부흥은 문예 부흥과 함께 시작된 셈이다.

커피를 마시면 졸지 않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이유는 카페인 성분 때문이다. 카페인은 뇌에서 피곤한 신경을 쉬게 하는 아데노신 작용을 방해해 각성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오늘날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커피 품종은 크게 아라비카종과 로부스타종 두 가지다. 그중 카페인 함량이 낮은 편인 아라비카종이 세계 커피 생산량 약 70%를 차지한다. 향미가 우수하고 신맛이 좋아 고급스런 커피로 대접받는데, 열대 고지대에서 재배된다.

아라비카보다 카페인 함량이 약 2배 정도 높아 거친 맛이 특징인 로부스타종은 주로 700m 이하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재배된다.

한 잔의 커피가 소비자에게 전해지기 위해선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한다. 커피 열매인 체리에는 두 개의 씨앗이 있는데, 불필요한 과육을 제거해서 말린 씨앗을 생두라고 한다.

생두는 ‘로스팅’이라는 2차 가공을 거쳐 원두로 만들어진다. 로스팅이란 생두에 열을 가해서 볶는 공정이다. 적게 볶으면 신맛이 강하고 많이 볶으면 쓴맛이 증가하는데, 볶음 정도는 커피 품종에 따라 다르다. 또 지역별로 로스팅 강약에 따른 선호도가 다르다. 흔히 유럽인은 강하게 볶은 것을 선호하며, 한국인은 엷게 볶은 것은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의 향미는 로스팅을 한 지 2주일이면 거의 사라지므로 소량으로 볶아 그때그때 마시는 것이 좋다.

마지막 가공 공정은 잘게 분쇄된 원두에서 다양한 향미 성분을 뽑아내는 ‘추출’이다. 추출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보통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에서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해 추출한다. 아라비카종 중에서도 최고급인 스페셜티 커피를 파는 커피 전문점은 주로 종이필터를 이용한 ‘드립 추출’ 방식으로 커피를 뽑는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가공 공정은 바로 자연 속에 숨어 있다. 인도네시아에 서식하는 긴꼬리 사향고양이는 곤충이나 작은 동물, 열매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잡식성 동물이다. 잘 익은 커피 열매도 매우 좋아한다. 사향고양이가 먹은 커피 열매는 위와 장을 거치면서 과육과 과피는 소화되고 커피씨 부분만 남아 배출된다. 이 과정에서 적정한 수분과 적당한 온도로 인해 생두가 고르게 숙성된다. 사향고양이 침과 위액 등이 섞여 발효과정을 거치며 생두에 특별한 맛과 향이 더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알려진 ‘코피 루왁’이다. 코피는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뜻하며, 루왁은 긴꼬리 사향고양이를 일컫는 인도네시아 방언이다. 사향고양이 외에 베트남 열대다람쥐와 예멘 원숭이 등도 그 같은 천연 커피가공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