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칼럼]세마텍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소재부품칼럼]세마텍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1987년 미국 텍사스에서 시작해 2010년 뉴욕주로 이전하며 지난 28년간 반도체 기술개발의 세계 중심이라고 자부하던 세마텍(SEMATECH, 반도체 기술개발 비영리 연구개발 컨소시엄)은 2015년 5월 초 뉴욕주립공과대학(SUNY Polytechnic Institute)으로 흡수됐다.

적과의 동침으로 공동 이익을 창출하는 매우 독특한 형태 비즈니스 모델은 새로운 기술개발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분야 생존 방식이었고, 이와 비슷한 기관은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1984년 벨기에 지방정부와 루벤대학 그리고 산업체 비영리 컨소시엄으로 설립된 아이멕(IMEC:Inter-University Microelectronics Center)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이멕은 반도체 핵심기술뿐만 아니라 반도체 기술을 활용한 무선통신, 센서, 헬스케어 등 새로운 기술 분야 연구개발에도 활동 영역을 넓히며 변모를 추구해 왔다. 이것이 도리어 반도체 핵심기술 개발 방향을 제시해 기관이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최근 사물인터넷(IoT)을 통한 초연결 세상이 거론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온통 센서기술 개발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상 사물인터넷을 구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센서를 이용해 어떻게 사물에 감각을 부여할 것인가’가 아니고, ‘온갖 사물이 무작위로 생산하는 데이터를 어떻게 저장·전송하고 처리할 것인가’다.

2025년에는 약 100조개 사물이 서로 연결될 것이며, 이들로부터 무작위로 생산되는 데이터는 전체 데이터 중 40%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만일 이렇게 생산되는 데이터를 현재 기술 수준의 반도체 소자로 저장·전송·처리한다면, 약 100개 원자력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반도체 소자는 미세화 기술로 꾸준히 성능 향상과 소모전력 감소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의 기술개발로는 사물인터넷 시대에 대비할 수 없기에 획기적인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뉴로모픽 소자기술은 병렬처리 기능으로 반도체 소자에 비해 에너지 소모가 매우 적으면서도(약 10억분의 1) 빠른 연산이 가능한 인간의 뇌를 모방하는 기술이다. 물론 동물 뇌와 컴퓨터 중앙연산처리장치(CPU)는 그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뇌를 모사해 CPU를 만들 수는 없지만, 저전력 연산개념 일부를 적용해 초저전력 반도체 소자를 구현할 수 있다. 또 절대적인 컴퓨터 작동원리로 여겨져 왔던 0과 1의 2진법 체계를 벗어나, 3진법 이상 컴퓨터를 구현하는 다치 로직 컴퓨터 기술도 소모 전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류 최초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1947년)은 10진법에 기반을 둔 장치였다. 1958년 러시아에서 개발된 SETUN은 3진법 컴퓨터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은 소재를 포함한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혀 아직 반도체에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의 반도체 연구개발 현주소는 어떠한가. 다른 경쟁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산업은 기업이 알아서 해야 할 산업으로 내팽개쳐진 느낌이다. 어느 정부부처도 미래 반도체 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

초저전력 반도체 기술 없이 센서기술만 확보하는 것은, 뇌는 작동하지 않고 눈과 귀만 달린 식물인간을 추구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렇게 된다면 한 가지 기술 분야만 고집하다가 주저앉은 세마텍 상황을 대한민국 산업 전체가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반도체 산업은 독립된 산업이 아니다. 스마트카, 스마트홈, 생활로봇 시대를 구현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핵심부품 산업이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jhahn@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