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한류 지속을 위한 과제

이광철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JPG
이광철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JPG

초기 한류를 주도했던 분야는 드라마였다. 드라마 ‘겨울연가’ ‘대장금’이 일본, 중국, 홍콩 등에서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으로 한류를 확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후에는 K팝이 한류를 이끌어 나갔다. HOT, 동방신기,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육성된 아이돌 K팝 가수가 아시아 시장을 휩쓸었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 유럽, 남미 등으로 확산됐다. 유튜브와 같은 SNS가 K팝의 세계시장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싸이는 강남스타일이 20억건 이상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일약 세계적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한류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싸이의 돌풍은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K팝은 댄스곡 위주의 획일화된 콘텐츠여서 세계 고객들이 언젠가는 식상해할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 드라마는 불륜, 복수 등 유치한 소재로 감동이 적다는 지적도 있다. 더욱이 한류콘텐츠 모두 아시아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 약점이다. 한류가 가장 활발했던 일본에서 최근 혐한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메르스 사태도 한류 지속적 확산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류는 향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것인가. 어떻게 하면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 할 수 있을까.

먼저 문화콘텐츠의 국제화 발전단계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4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국내 지향 국제화다. 국내시장을 대상으로 제작한 콘텐츠를 해외시장에 판매하는 단계다. 2단계는 지역 또는 특정 국가 지향 국제화다. 일본, 중국, 미국, 아시아지역 등 수출 목표시장에 맞춤형 콘텐츠를 제작해 판매하는 단계다. 3단계는 글로벌시장 지향 국제화다. 특정 지역에 한정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 틈새를 대상으로 표준화된 콘텐츠를 제작해 판매하는 단계다. 마지막 4단계는 글로컬(glocal) 지향 국제화다. 글로벌시장을 대상으로 동일한 주제와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개별시장의 차별적 요구에 적응한 콘텐츠를 제작 판매하는 단계다. 선진국 미디어기업이 추구하는 가장 발전된 단계다.

이러한 문화콘텐츠 국제화 4단계에서 한류콘텐츠는 어느 단계에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드라마나 영화는 아직 1, 2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고, K팝은 3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류콘텐츠를 대표하는 드라마를 보자. 대부분 드라마가 국내시장을 목표로 제작되고 있다. 대장금이나 겨울연가와 같이 해외에서 성공한 드라마도 원래 국내시장을 대상으로 제작된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우연히 해외에서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를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우연은 지속되기 어렵다. 이제는 해외시장을 목표로 제작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내 작품을 만든 후 해외시장을 대상으로 재제작을 하거나 아니면 동시 제작을 해야 한다. 다큐도 마찬가지다. 국내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번 제작해 놓고 외국에서 필요하면 수입하라는 식은 곤란하다. 문화의 글로벌화 또는 보편화가 진행됨에 따라 강남스타일처럼 국내지향 한류콘텐츠가 우연히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류 글로벌화의 장기적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2, 3단계 국제화로 발전하기 위한 체계적 접근 노력이 필요하다.

K팝의 국제화는 2단계를 넘어 이미 글로벌 지향을 추구하는 3단계에 진입해 있다. 한국적인 것을 넘어서고 있다. 글로벌시장에 아이돌 댄스뮤직 틈새시장을 개척해 확산시키고 있다. 이 글로벌 틈새시장은 경쟁자가 진입할수록 더욱 커지는 시장이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K팝은 한류콘텐츠 중 지속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로 평가할 수 있다.

문화의 글로벌화, 미디어 채널 다양화 등 한류의 글로벌 확산에 유리한 환경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등 대중문화 강대국과 정면 대결하기는 쉽지 않다. 세계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한류 고유의 강점을 바탕으로 글로벌 틈새시장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간 한류 성공은 문화적 유사성이 큰 아시아 지역에 국한된 측면이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탈아시아를 위해서는 글로벌지향 마인드와 더불어 글로벌 수준 콘텐츠 제작능력을 갖추고 소재의 다양성 및 독창성을 강화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한류가 국지적인 문화가 아닌 세계문화의 일부분이 될 것이고 지속가능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강남스타일 같은 우연은 지속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이광철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 kclee@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