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 발전과 수출·투자 등 해외 진출 촉진 방안을 고민하면서 최근 자주 마주치는 단어가 있다. 글로벌밸류체인(GVC)이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려면 이를 구성하는 부가가치 단계를 잘 분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분리된 부분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나라에서 생산하는 것이 중요한 기업 전략이 됐다. 가능하다면 부가가치를 올리는 생산 활동을 자기 나라에서 하는 것이 세계 각국의 중요한 정책적 전략 목표로 자리 잡았다.
우리 산업과 기업은 한동안 거의 모든 부가가치를 국내에서만 올려 수출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 단계에서는 산업 발전과 수출 진흥 전략 목표가 정확히 일치했다. 정부가 산업정책 추진 전략을 세우기도 비교적 쉬웠다. 일본은 부가가치 100% 국산화를 어렵게 만든 유일한 요인이었다. 자연스레 일본에 대한 핵심 부품, 기계류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우리 정부 중요한 산업정책 목표가 됐다. 당시 기업은 국내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성장에 직접 기여하는 존재였다.
GVC가 국제 현상으로 확산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수출을 들여다보면 40% 정도가 해외에서 들어온 부가가치다. 수출 제품 경쟁력을 높이려면 일본 등 선진국 핵심 부품도 사와야 하지만 중국 등 후발국에서도 값싼 부품을 조달해야 한다.
여기서 정부 고민이 커진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40%를 해외에서 가져오는 기업을 바라보는 눈이 과거와 같을 수 없다. 그래도 나머지 부가가치 60%를 생각하면 정부가 기업 생산·수출 활동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발 더 나가보자.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자동차·전자제품 생산업체가 해외 곳곳에 직영 공장을 지었다. 해외에서 생산해 현지 내수시장에 팔거나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비즈니스 중요성이 국내 생산 못지않아졌다. 오히려 중요성이 더 큰 때도 있다.
이 같은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 활동을 장려해야 할지, 국내 생산 활동을 하려 들어오는 해외 기업을 더 환영해야 할 것인지 정부로서는 고민거리다.
해외 투자한 우리 기업이 국내에서 생산한 부품을 조달하는 한 우리나라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 때로는 해외 투자 덕분에 그 나라 시장이 열리면서 국내 생산한 다른 제품 수출 길을 새롭게 확보하기도 한다. 해외 투자를 바라보는 정부 시선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기업이 해외 유수 기업 GVC 전략에 편입되는 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내 기업이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는 해외기업에 부품을 제공하는 것이 어쩐지 배신행위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경우 오히려 더 알찬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국내에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외국 회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 실력이 향상되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국내 기업이 해당 부품회사에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물론 정부도 적극 지원한다.
최근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난 기업은 GVC에 대한 시각을 더 복잡하게 했다. 중국 전자 대기업 하도급기업이 되어 현지 업체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점유율을 높여가는 기업이었다.
이 기업은 한국인이 경영하지만 중국 기업으로서 활동한다. 우수한 국내 인재를 데려가 좋은 일자리를 제공했으니 나름 우리나라에 기여한 셈이다. 이것 역시 우리가 택해야 할 GVC 활용 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dhkim@kie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