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국정감사를 하니 행정처벌을 하니 난리를 치겠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서 또 다른 이슈로 고개를 돌릴 것이다. 사람들이 불쾌한 기억은 빨리 잊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을 크게 뒤흔들었던 메르스도 이렇게 역사의 한 폐이지를 장식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 저편에 묻힐 것이다. 정보유출 이슈처럼…….
언젠가 비슷한 사건이 또 터지면 사람들은 부랴부랴 그동안 뭐했냐고 질타를 할 것이다. 우리는 사건을 겪으면서도 교훈을 얻는 게 없다고도 할 것이다. 기본을 무시했다고도 할 것이고, 소통을 안 한다고도 할 것이다. 또 컨트롤타워가 없다고도 할 것이다. 그래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외칠 것이다. 이번 메르스처럼…….
징비록이 방영되고 있다. 드라마이긴 하지만 보고 있노라면 정말 안타깝고 화가 난다. 수많은 백성이 죽고 잡혀가고 굶주리고 있음에도 왕과 일부 신하들은 자기의 안위만을 챙기고 있었다. 왜국과 전쟁 중에도 일부 양반들은 행여 자기 집, 자기 식구 다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라가 망해도 자기는 살아야 한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그런 수치와 환난을 당했음에도 결국 300년 뒤에 나라를 빼앗겼다. 이렇듯 역사는 반복하고 있다.
2014년 1월 3개 카드사에서 정보유출이 있었을 때를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카드사 콜센터가 문의전화 폭주로 불통이 되고 은행에서 재발급받기 위한 줄이 너무 길어서 영업시간을 연장까지 했다. 그때도 대통령이 나서고 장관이 국회에 불려가서 질타를 당하고 언론에서 각종 특집이 쏟아져 나왔다. CEO들이 공개 사과를 하고 금감원 징계를 받고 자리를 물러났다.
아마도 이번 메르스가 진정될 때쯤이면 비슷한 처리 프로세스를 밟게 될 것이다. 어딘지 데자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각 병원의 원장들과 고위 공무원들은 국회와 언론에 불려 나갈 것이고, 국회의원들은 각종 법안들을 제출할 것이고, 그런 대부분의 법안들은 몇 번 논의되다가 어딘가에 계류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메르스는 불가항력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의사, 간호사들이 초인적인 헌신을 했으니 상이라도 주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발표를 맡았던 책임자들을 엄히 다스리는 선에서 마무리할 것이다.
과거 카드사 정보 유출 때에도 똑같았다. 정직원이 직접 유출한 것도 아니고 외부 용역 직원이 유출했고 담당자가 맘먹고 유출하려고 달려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른바 재수가 없어서 터진 것이지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건 이후에 각 카드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이 정말 열심히 정보보안에 투자하고 인력을 보강했다. 그러나 지금도 다들 불안 해 하고 있다. 누가 하든 간에 언젠가 또다시 정보유출이 터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사건을 정밀 분석해서 교훈을 얻고 집요하게 대책을 실행하기보다는 사고가 터지면 또 책임자를 엄벌하고 그리고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내가 정말 걱정하는 것은 이 사건과 관련해 또다시 대규모 인사조치를 하는 거다. 보나마나 이번에 실수한 고위공무원과 병원의 관계자들이 이리저리로 자리 이동을 하거나 물러날 것이다. 아마 본인들도 이미 마음을 먹고 있고 주변에서도 다들 이제 그 사람들이 그만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곧 비게 될 그 자리를 위해 지금 뛰고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카드사태 때도 그랬다. 아마도 대부분의 안전사건 때도 그러지 않았던가? 이번 사태에 이른바 책임질 사람들을 다 자르고, 딴 부서로 보내고, 기를 꺾어 놓고, 만고의 죄인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 사태에서 배운 교훈이 새로 그 자리에 온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 전수될지 걱정이다.
이번 사태에서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람들은 그동안 개인적으로 엄청 괴로웠을 것이다. 분명히 자기는 잘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죄인이 되었으니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고 이제 윗분이 어떤 조치를 내려도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그동안 고생하면서, 고심하면서, 괴로워하면서 얻었던 수많은 경험들은 이들의 퇴임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다시 그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험과 교훈은 서류상의 인수인계로 전수되는 것이 아니다.
책임을 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어쩌면 가장 잔혹한 방법은 네가 네 실수를 인정하고 네가 한번 다시 해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책임을 진다는 것이 그 자리에서 단지 물러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게 정말 이 사건에 궁극적인 책임을 지는 것인가? 그 자리에 또 새로운 사람들 오면 다시 공부하고 대책 마련하고, 또 더 무서운 것은 전임자가 한 것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니 다 바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마구 흔들어 놓지는 않을까? 흔들어서 더 잘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지금 이런 국가적 재난을 반복하고 있을까?
그래서 안전사고나 메르스나 정보유출이나 사건만 나면 인사 조치부터 하는 것은 화끈해 보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는 하지만 상책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사건 이후에 항상 똑같이 그렇게 해 와서 지금 우리가 같은 사고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바뀐 것 같으면서도 바뀐 것은 없고, 다른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 별로 없는 그런 조치들을 계속하고 있다 보니 결과적으로 같은 사고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에서 얻는 교훈은 사고 그 자체뿐만 아니라 대책까지도 포함해서 얻어야 한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