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전문가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한국 보건의료 체계 취약성이 드러났고, 정부의 감염병 관리체계가 총체적으로 부실함을 보여줬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는 보건 관련 정부 거버넌스 개편은 물론이고 의료시스템 개선과 국제협력 강화 등을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박성현)이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메르스 현황 및 종합대책’을 주제로 개최한 ‘제91회 한림원탁토론회’에서 참석자는 메르스 정부 대응이 총체적 문제를 드러냈고 이를 계기로 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이종구 한-WHO 메르스 합동평가단 공동단장(서울대 글로벌의학센터장)은 “미국은 한국에서의 생물테러에 대비해 2011년부터 한국 정부와 함께 준비해 왔는데 메르스 발생으로 한국 정부 준비 미흡이 나타나 당황하는 것 같았다”면서 “WHO도 환자 한 명이 해외로 나간 상황에 매우 부정적 인식을 표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보공개가 늦어 다른 나라가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서 각종 취약함도 나타났다. 이 단장은 “정보소통으로 인한 위기관리 문제점이 계속 지적돼 정부 신뢰가 저하되고 있다”며 “아직도 병원감염예방조치, 접촉자 추적과 격리 조치 등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사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번에 노출된 문제점을 반성하고 새로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예방을 위해 법령과 관련 운영체계를 정비하고 감염병 감시망을 대폭 확충해 고위험 감염질환을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며 “감염병 위기관리 전문화와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외 위기소통을 강화해 공포 발생과 피해를 최소화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협력도 강조했다.
토론자도 허술한 정부 대응과 부실한 관리체계를 질타했다.
정해관 성균관대 교수는 “메르스 사태는 한국 보건의료 체계 취약성을 정면으로 관통한 사건”이라며 “질병관리본부를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수준에서는 앞으로도 감염병 유행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보면 2003년 사스 때 3조원 정도의 피해를 본 반면에 이번 메르스는 최소 10조원 이상 피해를 야기할 것”이라며 “감염병 유행은 사회경제적 일이고 국가적 안보에 해당하는 만큼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질병관리본부가 최소한 총리실 직속 정도는 돼야 타부처를 움직이고 인구이동 제한 등 사회안전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한국은 심리전에서 패배했다”면서 “정부 초기 발표가 틀렸고 초기 대응도 미숙하면서 국민이 불안감에 빠졌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역학조사관을 확대하고 특히 국제역학조사관이 해외 감염병 현장에 방문해 사전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강원 국군수도병원 교수는 “정부 기구와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데 보건부 독립,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 등은 국민적 합의만 이뤄지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국민이 메르스를 잊기 전에 외양간을 어떻게 고칠지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
권건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