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71> 생즉사, 사즉생

[이강태의 IT경영 한수]<71> 생즉사, 사즉생

생명은 소중하다. 한번 생명을 잃으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살고, 죽는 문제는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하다. 생즉사, 사즉생은 이순신 장군 말씀이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 하면 산다는 말씀이다. 좀 현대적으로 풀어 말하면 죽기 살기로 싸우면 살 가능성이 있지만 눈치 보면서 살려고 슬슬 피해 다니면 살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월급쟁이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예전에 어떤 직장에서 입사한 지 3개월 된 직원들에게 이상적인 직장이란 어떤 직장인지 조사한 적 있다. 놀랍게도 1위가 정년퇴직까지 다닐 수 있는 회사였다. 요즈음 취업이 안 되는데 극심한 경쟁을 뚫고 취직이 돼서 그런지 입사 3개월 된 신입직원들의 목표가 정년퇴직 때까지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전 경기 좋을 때는 신입사원 뽑으면 다른 회사로 도망갈까봐 전전긍긍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신입사원 시절을 겪은 나로서는 정말 충격이었다. 참고로 2위는 복리후생이 좋은 회사, 3위는 월급이 많은 회사, 4위는 가족과 같은 분위기 좋은 회사, 5위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보장하는 회사였다.

내심 내가 바라던 대답은 직원의 잠재력을 개발해 주는 회사, 공정한 경쟁을 통한 빠른 승진이 가능한 회사, 상하좌우의 열린 소통을 하는 회사, 글로벌로 뻗어 나가는 회사, 이상적인 기업 문화로 사회에서 존경 받는 회사, 첨단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회사, 경영성과가 탁월하고 공동체와 같이 상생하는 회사, 뭐 이런 것이 한두 가지 끼어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성공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그런 경영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심 섭섭하고 심지어 걱정까지 됐다. 어쩌다 신입직원 생각이 이 지경이 됐는지 하는 기성세대로서의 자책감도 가졌다.

또 한편으로는 아! 그래서 취업생들이 공무원, 판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구나 이해하게 되었다. 뭘 하든 오래 회사 다니면서 가족들 잘 먹여 살리고, 주말에는 가족과 같이 즐겁게 지내고, 내 취미 생활 열심히 하고, 가끔 가족들과 국내외 여행 떠나고, 뭐 그렇게 살면 됐지 성공이라는 게 별거냐? 하는 것 같았다.

메르스 사태 초기 때 예방법으로 낙타고기 잘 익혀 먹으라고 해서 사람들이 황당해 한 적 있다. 그걸 준비한 담당자는 과거에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메르스 예방 대책을 급히 만들다 보니 뭔가 근거 있는 것을 발표해야 했고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가 있는 WHO 것을 황급하게 발표했을 것이다. 이 발표를 보면서 그 담당자가 얼마나 허둥댔나 하는 점과 평소에 이런 급성 전염병은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었구나 하는 점을 느꼈다.

젊은 사람들이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뭔가?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어깨에 힘주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목청 큰 민원인에게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뭔가? 외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심과 내적으로는 정년퇴직까지 다닐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거기다가 퇴직하면 적지 않은 연금으로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평소에 없던 일도 만들어내면서 미친 듯이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전염병 사건이 터진 상황에서도 뭐 그리 놀라거나 허둥대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에 하던 일이고, 미리미리 대책을 수립하고 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오고 있었다면 내가 말하던 그 상황이 드디어 터졌고 그러한 상황이 미리 올 줄 알았기 때문에 평소에 미리 생각해 놓은 것도 있고 해서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오래, 조금 많게, 조금 더 시끄러운 가운데 일하면 된다. 적어도 주위 사람들의 조롱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칼럼을 통해 성공한 CEO들을 직접 모셨다고 밝혔다. 이 분들 모두 일흔 가까이 일했고, CEO만 20년 넘게 하신 분들이지만 이분들의 처음 목표가 오래오래 회사 다니자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직접 들은 얘기로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닌 적도 많았다고 들었다. 4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슬럼프도, 좌절도, 실패도 있었지만 구질구질하게 오래 다니겠다는 생각은 아예 안 했던 분들이다. 일을 절대 피하지 않았고 일과 정면으로 부딪쳤으며 일로서 자기 존재 이유를 입증한 분들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회사에 도움이 안 되면 내일이라도 관둔다고 한 분들은 4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했고,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든 안 하든 회사 관두면 큰일난다고 하던 사람들은 20년도 못 넘겼다. 그래서 지금 정년퇴직을 꿈꾸는 신입사원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회사는 오래 다니고 싶다고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단지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는지 아닌지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대범하게 회사가 나를 붙잡을 것이라는 실력과 배짱을 가질 필요가 있고 또 그런 배짱으로 회사 성장에 확실하게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느덧 직장 생활 40년을 하고 자랑스럽게 정년퇴직하는 자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슴 조마조마하면서 부서에 새로운 일 떨어지면 수류탄 떨어진 것처럼 납작 엎드려 눈치만 보면, 글쎄, 20년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감히 바꿔서 월급쟁이들에게 말한다면, “일은 안 하면서 회사를 오래 오래 다니고 싶어 하면 머지않아 잘릴 것이요, 회사가 나를 필요치 않으면 내일이라도 관두겠다고 하면 오래오래 다닐 것이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