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과학뉴스]시민 생명 지키는 소방관, 소방관 생명 지키는 과학

지난해 5월 경기도 고양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망자 9명과 부상자 115명이 발생했다. 지난 1월에도 의정부 아파트 화재로 13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건축 기술과 자재는 발전했지만,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피해가 갈수록 커진다.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방관 피해도 크다. 지난 5년 간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만 29명이나 된다. 세계적으로 화재를 예방하고, 소방관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과학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시도가 활발하다.

미국 최대 인증기관 UL(Underwriters Laboratories)은 전기, 안전, 환경 등 다양한 안전규격을 개발하고, 인증심사를 한다. 연간 UL마크를 부착하는 제품이 220억개에 이를 정도다.

1894년 설립된 UL 탄생도 화재 안전(Fire Safety)이 주요 계기가 됐다. UL은 현재도 ‘뉴 사이언스(New Science)’라는 기치에 따라 다양한 변수로 인해 복잡하고 위협적으로 변하는 현대 화재를 방지하고 진압하는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UL이 모의 화재시험을 통해 연구한 결과 1950~1970년대 일반적인 건물에 비해 현재 건물에서 발생하는 화재 진행 속도가 8배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합성 소재와 변형된 건축 양식 등으로 인해 발화 시점이나 불길 확산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UL이 진행한 화재 발생과 건물 붕괴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한 실험 결과가 있다.

20세기 중반 건물은 화재 발생 후 8분 안에만 소방관이 도착하면 평균 40분이면 화재를 진압했다. 반면 현대 건물은 불과 90초 안에도 붕괴까지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 소방관과 시민이 화재 발생 시 얼마나 더 큰 위협에 처해 있는 지 보여준다. 화재 진압을 위해 신속한 소방관 투입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화재 시 발생하는 유독 연기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UL, 시카고 소방국, 신시내티의대는 공동 연구를 통해 화재 유독가스는 마이크론 단위 이하 미세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어 들이마셨을 때 당장 나타나는 증상뿐 아니라 장기간 조금씩 노출되더라도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화재 후유증으로 치명적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나 소방관 모두 적절한 방지 대책이 요구된다.

UL은 화재 방지와 진압을 위한 시뮬레이션 연구 등 첨단 기술도 활용하고 있다. 화재 현장을 재현하는 방식 연구 외에도 UL은 진화된 컴퓨터 모델링 방식을 통해 가상 화재 실험을 진행해 효과적인 화재 진압 방법을 연구 중이다. 물리적으로 화재 현장을 만들어 실험하기 어려운 부분을 해소해 소방관 안전과 시민 대피를 빠르게 도울 수 있는 데이터를 취합하는데 도움이 된다.

UL 관계자는 “현대 주거환경 소재 변화로 복잡해진 화재 위험성에 대해 과학적 접근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 중”이라며 “화재로 인한 소방관과 시민의 부상이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고, 연구결과를 필요로 하는 정부나 업계 누구와도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