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과 신재생 갈림길에 선 유럽]<하>체코-주변국, 원전 확대 갈등

유럽 주요국이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를 함께 가져가는 에너지믹스(Energy Mix)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강력 육성해온 영국도 최근 기후변화 대책으로 신규 원전 8기 계획을 밝힌 상황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여파로 원전 계획을 보류했던 유럽 국가도 원전이 건너뛸 수 없는 징검다리임을 절감하게 됐다.

렌카 꼬바초프스카 체코 산업부 에너지국제협력국장(왼쪽)이 한국 기자들에게 원전 정책기조를 설명하고 있다.
렌카 꼬바초프스카 체코 산업부 에너지국제협력국장(왼쪽)이 한국 기자들에게 원전 정책기조를 설명하고 있다.

체코는 국가 에너지 전략을 원전 중심으로 선회한 대표국이다. 지난 5월 2040년까지 에너지계획을 담은 ‘국가에너지콘셉트(SEC)’를 최종 승인하면서 듀코바니 원전 5호기 신규 건설 등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석탄을 줄이는 방향을 확정했다.

체코 SEC는 우리나라 제7차 전력수급계획과 유사한 점이 많다. 온실가스 다배출 연료인 석탄을 사용한 발전은 줄이고 원전과 신재생 확대를 목표로 잡으면서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골자로 내세운 점도 동일하다. 현재 6개 원전을 운영 중인 체코는 듀코바니 원전과 테멜린 원전 부지에 각각 1기씩 2기 원전을 추가한다는 계획을 잡았다.

반면에 신재생에너지는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그동안 태양광에 지급하던 지원금 규모를 줄여나가고 설치 사업도 주택과 지붕 정도로 한정할 계획이다. 신재생 사업으로 인해 농업에 피해가 발생하는 부작용을 줄이고 시장 경쟁력이 약한 에너지원에 대한 정부 지원은 줄일 방침이다.

체코 원전 확대 정책은 에너지 안보 차원의 선택이기도 하다. 렌카 코바초프스카 체코 산업부 에너지국제협력국장은 “에너지 안보와 지속성,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에너지 정책을 수립했다”며 “내륙국가인 체코 에너지수급 자립을 위해서는 원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렌카 국장은 원전 확대 계획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듀코바니 원전 수명을 최근 30년에서 40년으로 10년 연장했고, 추후 이를 다시 10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노골적이기까지 한 체코 원전 확대 기조는 공업 중심 산업구조와 국민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스코다자동차로 대표되는 체코 공업은 국가경제 척추 역할을 하고 있다. 공업이 무너지면 사실상 국가 존립이 흔들리게 될 정도다. 그만큼 산업 종사자 비중이 높고 원전에 대한 반감은 크지 않다. 렌카 국장은 “체코 국민이 가진 원전 관련 여론은 후쿠시마 사고 당시 3개월을 제외하면 내내 60% 이상 지지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사정은 좋지만 주변국과 관계는 늘 골칫거리다. 석탄 대체 에너지로 가스를 생각할 수 있지만 주변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입장에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최소한 장치는 필요하다. 러시아라는 초대형 공급처가 있기는 하지만 체코 국민 다수가 가지고 있는 반러 감정과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도 무시할 수 없다.

렌카 국장은 “체코 원전 확대에 독일과 스위스가 불편한 감정을 가지는 것은 잘 안다”며 “하지만 지금 체코는 국가적으로 에너지자립이 시급하며 주변국 눈치를 볼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체코 원전 확대 기조에 주변국이 어떻게 반응하고 움직일지는 여전히 지켜볼 유럽 갈등의 또다른 뇌관이다.

프라하(체코)=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