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과잉’ 시대다. 휴대폰으로 안부를 묻거나 일상을 지인과 공유하는 일은 자연스레 삶에 녹아들었다. 반면에 이러한 기술발전에 회의적인 의견도 들린다. 소통을 위한 기술이 소통의 본질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연예인이 SNS에 올린 셀카 사진에 달리는 수만개의 ‘좋아요’ 클릭에는 이것이 진정한 ‘좋아요’인지 의문이 생긴다. 각종 기업 이벤트와 가십성 기사 등 ‘공유하기’는 순수한 의미의 공유하기가 아닌 ‘스팸메시지’로 분류되는 때가 많다.
하지만 소통의 힘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뒤섞인 채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는 큰 축이다. 지난해 유행처럼 번진 ‘아이스 버킷’ 캠페인은 루게릭병 환자 고통을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계기가 됐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지난해 세월호 참사 등 범국가, 범세계적 슬픔에 이어진 ‘프로필 리본달기 운동’은 추모의 물결을 만들었다.
장난스럽고 진지하지 못한 참여자들이 일부 섞여 있거나 ‘남들이 하니까 나도 그냥’이라는 무의식이 일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 사회에 충분히 가치가 있다. 소통으로 사회에 공통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목소리에 호소력 있는 형태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단순히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메시지를 담은 심벌 도안을 만드는 일이라든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슬로건을 짜는 일, 복잡한 정보를 쉽게 알리는 인포그래픽 등 다양한 시각화 작업으로 의도를 구체화한다.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에도 소통의 힘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애플 RED product는 붉은색 제품을 구입하면 판매 금액 중 일부를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 국제 기금에 기부한다. 삼성전자 배터리팩 ‘배터리 프렌즈’는 제품에 멸종위기 동물들을 그려 넣어 수익을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한다. 디자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핵심 매개체가 되고 있다.
전쟁과 재난, 질병처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소통하는 문제 외에도 세상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어 왔다. 그러나 소외받은 사람들, 특수한 장애, 억울한 사연, 멸종위기 동물 등 관심의 음영지역에 있는 문제는 소통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이슈를 다루는 쪽에서는 직접적인 문제 해결에 앞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이 가장 절박하다. 시각적 충격을 일으키는 자극적 디자인을 쓰는 이유다. 귀여운 하프 물범이 피범벅된 사진을 밀렵 반대 포스터로 사용하고, 펭귄과 북극곰이 멸종위기 동물을 대표하는 건 사자나 악어 등 맹수를 모델로 하는 것보다 ‘더 슬프지만 효과적인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여러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로 접근하면 사회적 측면에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반전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한다고 당장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친환경 소재 제품을 디자인한다고 서식지를 잃은 동물을 당장 구할 수도 없다. 이처럼 세상을 바꾸는 일은 디자이너 개인이 혼자 이뤄낼 수 없다.
하지만 디자인으로 작은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에 동의하는 작은 목소리들이 모이고 소통하며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세상은 변화를 향한 조금 더 큰 한 발짝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김남성 성실화랑 대표 sung@ssgraphic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