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공대 출신의 필자가 스피치 베스트셀러를 저술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 본다. 지금은 앵콜강연 요청을 받는 강사가 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극심한 발표불안 때문에 스피치학원과 스피치동호회를 찾아 다녔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한 달”
첫째 날. 계획대로 한 페이지를 썼다. 뿌듯했다. 둘째 날. 역시 한 페이지를 썼다. 역시 뿌듯했다. 셋째 날. 그 날도 한 페이지를 썼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가면 되는 것이야.’ 어느덧 나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 있었다.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었다. 하루 하루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이었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열정의 힘은 나를 서서히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넷째 날. 그 날도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써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서너 줄 정도 쓰고는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글발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나마 쓴 글도 두서가 없다. 마음 속에 생각만 맴돌 뿐, 글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다. 뭔가 꽉 막힌 느낌이다. 이런 이런. 일사천리로 나갈 것 같더니 원인 모를 무언가가 가로 막은 듯 꿈쩍도 않는다.
겨우 세 페이지 쓰고 막혀 버리다니. 이럴 수가! 마음은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이건만 딱 여기까지가 내 한계란 말인가?
하기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글 다운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내가 세 페이지 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일 수도 있다. 그 당시 나의 능력은 어찌 보면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그나 저나 어쩌란 말인가?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머릿속에 흐트러진 생각들만 맴돌 뿐 그것이 정제된 형태의 문장으로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글이란 것이 생각들이 정리되어 깔끔하게 물 흐르듯이 흘러가야 하건만, 마치 흐트러진 퍼즐처럼 제각각 따로 노는 느낌이다. 머리를 쥐어짜고 쥐어짜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은 주춤 주춤 머뭇거린다.
넷째 날 찾아온 이 막막함. 그렇다. 그랬던 것 같다. 과거에 몇 번인가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도 딱 이랬던 것 같다. 세 페이지 정도 쓰고 막혔고 그 날 이후로 묻어 버렸던 것 같다.
비단 책 뿐이랴. 이래서 `작심삼일`이라 했던가? 무슨 일을 하던 새로운 일을 하다 보면 꼭 이 3,4일이 문제다. 금연, 운동, 다이어트, 영어회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바짝 긴장했다. ‘아니야! 이번엔 달라. 꼭 책을 쓸 것이란 말이다.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란 말이다!’
그렇다.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가! 순간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생생한, 이제는 매우 익숙해진 장면들을 떠올린다. ‘아, 전국의 교보문고에 내 책이 쫘악 깔려 있다. 수백 명 앞에서 저자강연회를 한다. 그들은 환호한다. 저자강연회가 끝이 나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 나는 기분 좋게 사인을 하고 그들과 인증샷을 찍는다. 인증샷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독자의 감사편지를 받는다. 그렇다. 내 책은 베스트셀러다!’
눈을 감은 내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기분이 좋아졌다. 눈을 뜬 후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려 놓는다. 그리고 글을 써내려 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다섯째 날. 이럴 수가! 그 날은 채 두 줄도 못썼다. 완전히 꽉 막혀 버렸다. 여섯째 날. 일곱째 날… 아!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 쓴 내용은 고작 10페이지. 그 10페이지도 두서가 없이 그냥 문장만 나열한 것 같았다. 억지로 쥐어 짰으니 오죽 했으랴. 마음은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이건만 글발은 아직 ‘미생의 작가’다.
‘아, 이럴 수가!’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생겨 버렸다. 계획에 의하면, 한 달이면 30페이지를 써야 한다. 그런데 고작 10페이지라니. 하기사 지금까지 제대로 글을 써본 적도 없고 책도 내 본 적도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 페이지 정도야 쓸 수 있겠지만 몇 백 페이지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그러나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왜냐고? 간절하니까. 꼭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으니까. 아니 나는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니까. 나는 어김없이 눈을 감고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들을 생생히 떠올린다. ‘전국의 교보문고에 내 책이 쫘악 깔리고…’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찬란한 미래를 생생히 그린다. 그리고 그 그림이 내 의식과 잠재의식 깊숙이 자리할 때까지 밑바닥까지 심고 또 심는다. 그러다 보면 여지없이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뿌듯함을 온 몸으로 느낀다. 그러면 열정이 다시 살아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은 더 선명해져 간다. 내 의식 속에는 미래가 이미 와 있다. 모든 세포들이 그 기쁨을 느끼고 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찬란한 미래를 의식의 세계에 실현시켜 나갔다. 그리고는 꿋꿋이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느덧 나는 최면에 걸린 듯 했다. 어느덧 나는 정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분이 오시다”
그러기를 한 달여가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미래를 온 몸으로 느끼며 기쁨에 벅차 열정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밀려드는 공복감.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는가? 놀라지 마시라. 그 날 하루 동안 무려 30페이지 분량의 글을 쏟아 내고 있었다. 단 하루 만에 말이다. 한 달 동안 고작 10페이지밖에 쓰지 못했던 내가 단 하루 만에 30페이지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갈증을 느낀 나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찬찬히 내가 쓴 글을 읽어 보았다. 아! 놀랍다. 이게 정녕 내가 쓴 글이란 말인가! 내가 쓴 글 같지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불러 주어서 받아 적은 글 같았다. 분명 나의 경험이었고 나의 생각이긴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매끄럽게 써지다니.
정녕 정말로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단 말인가! 글이 술술 읽혀 나갔다. 전혀 막힘이 없었다. 한 달간 머리를 쥐어 짜면서 쓴 10페이지를 읽어 보았다. 어색한 곳이 곳곳에 보였다. 그런데 그 날 쓴 30페이지는 너무나 매끄러웠다. 이럴 수가! 정말 믿기지 않았건만 내가 쓴 글임이 분명했다.
“나는 그 날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 분’이 오신 것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첫 책에서도 밝혔지만 종교는 없으나 ‘신’의 존재는 믿는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생각해 보건데 신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그 신이 인간이 종교에서 말하는 그런 형태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인간의 한계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전혀 다른 형태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 ‘그 분’이 그 날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나의 경험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친절하게도 나에게 차근차근 내가 써야 할 글을 불러 주신 것이다. 그 날의 경험은 그렇게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 그 분이 오셨구나.’ 그렇다. 그 분이 오셨다. 난생 처음 그 분을 맞이했다. 그 느낌. 그 무엇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벅찬 느낌.
그래. 그 분이 오셨다. 그 분을 영접했다. 내가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접신’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방언` 현상도 이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절절한 믿음, 잠재의식 깊숙이 자리하게 된 믿음, 이 믿음은 마치 방언처럼 하루 만에 30페이지의 글을 쏟아 냈던 것이다.
내 생에 처음 온 그 분. 그 분을 놓칠 수 없다. 이 느낌을 놓칠 수 없다. 나는 다음 날도 그 분을 붙들고 늘어졌다. 고맙게도 그 분은 다음 날도 나와 함께 하셨다. 20페이지를 막힘 없이 써내려 갔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 분은 나와 함께 하셨다. 그 날 이후 그 분은 수시로 나와 함께 하셨다. 그 날 이후 하루에 10페이지 정도씩 꾸준히 써나가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에 대한 믿음”
이윽고. 책을 다 썼다. 책을 쓰려고 키보드를 두드린 지 딱 두 달만이다. 애초에 1년에 걸쳐서 쓰려던 책은 그렇게 2달만에 완성이 되었다. 2달만에 말이다. 믿기시는가? 그런데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오탈자까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교정을 마쳤다. 목차도 재정비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도 삽입했다. 첫 책 ‘스피치와의 정면승부’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뿌듯했다.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았다. 이럴 수가! 완전 감동이었다. 이 책을 읽는 그 누구라도 감동을 받을 것이며 열정이 불타 오를 것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나는 해 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 낸 것이다.
책을 쓰는 이 경험을 통해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새로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잘 안 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해 나가면 반드시 ‘그 분’이 오신다. 그 때부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 다음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분이 관장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이성적으로 풀어보자면 이렇다. 우리가 어떤 일을 꾸준히 해 나가면 처음에는 성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지는 않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성과는 들이는 ‘돈과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더디다. 그렇지만 성장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성장이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며, 어느 순간 더디게 진행되던 성과는 폭발적으로 그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성과곡선이 성장곡선을 추월하는 그 순간을 우리는 ‘임계점’이라고 부르며, 나는 ‘그 분이 오신 날’로 표현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에 대한 믿음. 이것이 우리가 어떤 일을 해 나갈 때 당장의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 해 나가는 동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중도에 포기하고는 한다.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재미도 없고 성취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신은 참 짓궂다. 모든 것을 신이 관장한다고 보면 성과도 신이 관장할 것인데, 처음 하는 일은 성과가 잘 나오지 않게 만들었으니 참 짓궂기도 한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이러한 신의 뜻을 잘 알아서 임계점까지 꿋꿋이 해나가는 것만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을 맛볼 수 있는 길이다.
“미래가 먼저 온다”
꾸준히 어떤 일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임계점을 뚫고 올라갈 것이라는 믿음. 그 미래에 대한 확신. 그러한 강한 확신을 가질 때 의식의 세계에 ‘미래가 먼저 온다.’ 이런 상태가 되면 두려움도 없고 좌절도 없고 실패도 없다.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의식 속에 확실히 자리잡은 미래는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 때까지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온 몸과 마음을 열정으로 물들인다. 추호의 의심이 있을 수 없다. 당연히 다가 올 미래니까 말이다.
그랬다. 첫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었다. 미래가 먼저 온다. 그렇다. 우리는 무언가를 착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과거, 현재, 미래가 맞다. 그러나 현실을 견인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분명 ‘미래가 먼저 온다.’ 그리고, 그 미래가 의식 속에 확실히 자리 잡을 때 비로소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로 흘러간다. 그렇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 세계의 흐름을 이제 이해하겠는가? 바로 미래가 먼저 오고,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과거로 흘러간다. 즉, 미래, 현재, 과거의 흐름인 것이다.
‘미래가 먼저 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새로운 세상에 살게 된다. 아니 세상은 그대로다. 당신이 새로 태어났을 뿐이다. 당신이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눈도 달라졌고 당신의 인식도 달라졌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다만 당신의 관점이 바뀐 것 뿐이다. 이처럼 당신이 변하면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 믿어라. 미래가 먼저 온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필자소개/빈현우 발표불안해결사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공대를 졸업한 필자는 특이하게도 작가가 되고 프로강사가 된다. 저서로는와 가 있다. 스피치, 리더십, 열정을 주제로 한 특강과 더불어 한국리더십센터 등에서 ‘스피치리더십 8주과정’ 을 진행한다. 2달만에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로 만든 스토리와 1년만에 앵콜강연 요청을 받는 프로강사가 된 열정의 비밀을 칼럼을 통해 연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