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투자·수출 정책 총동원…백화점식 나열로 효과 미지수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상반기 내내 수출이 뒷걸음질쳤다. 갑작스러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국정에 비상이 걸렸다.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해외 관광객 발길이 끊겼다. 나라 밖에서는 중국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서 유럽발 금융 위기감이 높아졌다. 정부가 투자 활성화와 수출 경쟁력 강화에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총동원한 이유다.

[이슈분석]투자·수출 정책 총동원…백화점식 나열로 효과 미지수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는 부진한 생산·수출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생산·수출 둔화로 설비·건설투자 증가율이 견조하지 않다. 메르스 사태가 소비 침체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

벤처 부문은 성장세가 빠르지만 창업 후 3~7년 데스밸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산하는 기업이 여전히 많다. 벤처캐피털이 보통주보다 채권 형태로 투자하는 비중이 높다. 중간회수도 부진해 전체 생태계에 선순환 구조가 갖춰지지 않았다.

◇규제 풀어 ‘투자 활성화’

정부 투자 활성화 정책 핵심은 벤처·창업이다. 가시적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 회복세를 조기 시현한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벤처·창업 붐 확산 차원에서 △기술창업 촉진 및 우수 인력 유치 △인수합병(M&A) 지원 △민간 모험투자 확대 등을 추진한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역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기능을 보강한다. 2017년까지 연간 창업·벤처투자 2조원을 달성한다.

정부는 우수 기술인력 창업을 촉진하려 연대보증 면제범위를 확대한다. 기술등급 BBB 기업 신기보 연대보증 면제대상을 종전 창업 후 1년 이내에서 3년 이내 기업까지 확대한다. 창업 3년 이내 기업 중 면제대상 기업 비중은 16.1%에서 35.8%로 확대될 전망이다.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을 M&A할 때 적용하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계열편입 유예기간을 종전 3년에서 7년으로 확대한다. 기술혁신형 M&A 세제지원 기준을 완화하고 일몰을 2018년까지 연장한다.

민간 투자 활성화 목적으로 M&A 등 분야는 모태펀드 출자 없이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할 수 있게 한다. 창업투자조합 운용사는 신기술금융사·유한책임회사(LLC)까지 확대한다. 거래소 시장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간 경쟁을 촉진한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원스톱정보 제공 △창업 아이디어 발굴·구체화 △사업화 △판로·해외진출 거점으로 발전시킨다. 혁신센터 특화산업과 부처사업을 연계하고 혁신센터를 거친 벤처·창업기업을 후속 지원한다.

◇산업 경쟁력 높여 ‘수출 살리기’

정부는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뒤로 하고 추락 중인 수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단기적으로는 하반기와 내년에 걸쳐 16조2000억원 규모 무역금융을 확대·공급한다. 중소·중견기업에 8조9000억원 무역금융을 추가 공급하고 해외 금융기관과 연계해 6조6000억원을 지원한다. 엔·유로 약세 피해기업에 1500억원, 수출 부진 품목 기업에 5000억원을 각각 지원한다.

8월과 11월 전자상거래 수출 시장을 겨냥한 대규모 온라인 특별할인전을 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온라인수출지원팀’을 신설,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돕는다.

수출 품목·시장을 다원화하고자 민간 유통사와 공동으로 글로벌 생활명품 100개를 육성한다. 중동·중앙아시아·러시아 등 신흥 시장에 맞춘 무역금융과 마케팅을 펼친다.

중장기적으로는 제조업 혁신으로 근본적인 수출 경쟁력 제고를 꾀한다. 시장 지배력이 큰 주력 품목 경쟁력을 높이면서 차세대 유망 품목을 선제 개발해 시장을 선점한다.

제조업 글로벌밸류체인(GVC) 변화에 맞춰 베트남·멕시코 등 해외 생산거점을 수출 확대 기반으로 활용하는 전략도 강화한다.

제도 차원에서는 △R&D 투자 조세특례 일몰연장 적극 검토 △핵심 기술·인력 유출을 막는 ‘인력관리 가이드라인’ 개발·보급 △융합 제품 신속 출시를 위한 ‘규제 그레이존’ 해소 및 기업실증특례제도 도입 등을 추진한다. 연내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완료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56개 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내년까지 총 91조원을 투자한다고 전했다. 업종별 투자 규모는 반도체·디스플레이 58조원, 철강·석유화학·정유 21조원이다. 자동차와 나머지 업종이 12조원 규모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모바일중앙처리장치(CPU) 등 차세대 유망품목 육성에 민관 합동으로 6조8000억원 규모 연구개발(R&D) 투자를 실시한다.

◇백화점식 나열…효과 있을까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정책을 모두 모아 ‘정책종합선물세트’를 내놓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눈에 띄는 핵심·획기적 대안이 없고 성과가 불투명한 정책이 포함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종전 발표·논의한 계획을 일부 개선해 열거한 측면도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거점기능 강화는 구체적 성과를 가늠하기 힘들고 단기간 성과 창출이 힘들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투자 활성화와 별도로 수출 대책에서는 중소·중견기업 해외 진출거점 수단으로 언급됐다. 우수 벤처 발굴·육성을 넘어 중소·중견기업 해외 진출까지 돕는 것이 가능하냐는 지적이다.

중소 IPO 활성화를 위해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은 최근 금융위원회 ‘거래소시장 경쟁력 강화 방안’에 이미 포함된 내용이다.

몇몇 사업은 실효성이 없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정부는 수출 활성화를 위해 스마트폰 앱과 QR코드를 활용한 한국산 정품인증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류에 힘입은 한국산 프리미엄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해외 소비자에게 정품인증 방식을 어떻게 홍보하고 얼마나 많은 품목을 정품인증 리스트에 넣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칫 전시행정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최근 국내 제조업 해외 생산 확대와 글로벌밸류체인(GVC) 변화의 근본적인 대책이 담기지 않은 것도 아쉽다. 수출형 유턴기업 지원과 해외 생산거점 활용 등 일상적 정책을 담는 데 그쳤다. 보다 면밀한 검토를 바탕으로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 마련이 요구된다.

상당수 정책은 법 개정이 필요해 정부 계획대로 추진될지 불확실하다. 최근 정부 경제 활성화 관련 정책 발표 때마다 등장하는 기업활력 제고 특별법은 국회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연내 제정을 장담할 수 없다.

현장대기 프로젝트 가동이나 민간 기업 91조원 규모 투자 계획은 자연스럽게 진행 중인 것을 정부가 지나치게 정책 효과로 부각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