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전쟁 2015]특허 패러다임이 변한다…전쟁에서 공유·협력으로

세계 특허시장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특허 중요성은 변함이 없지만 특허를 대하는 기업 자세에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기존에는 자사 특허로 경쟁사를 공격하고 특허 전문기업이 기업을 공격하는 전쟁터였다. 하지만 그동안 소모적인 특허전쟁을 겪으면서 공격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 모두에게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부가 특허관리전문회사(NPE)의 무분별한 소송에 제동을 거는 조치를 취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제는 소모적인 전쟁을 벗어나 상생의 특허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력사는 물론이고 경쟁사 간에도 특허 협력으로 상생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구글·시스코와 특허 크로스라이선스를 맺고, LG전자가 구글과 특허 크로스라이선스를 체결한 것이 상생 모색의 대표적인 예다. 대기업과 협력사가 특허공유에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자신문과 특허청이 주최하고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회장 이정훈) 주관으로 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특허전쟁 2015’ 콘퍼런스에서도 공유와 협력이 강조됐다.

‘특허전쟁에서 특허공유와 협력으로’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 발표자들은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배타적인 특허정책에서 공유와 협력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별강연자로 나선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모든 것을 혼자 하던 노키아는 망했지만 협력을 선택한 애플과 구글은 살아남았다”면서 “창조경제 시대 승리 방정식은 혼자 하던 시대에서 협력하는 시대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모든 기술을 혼자 개발하기보다 우수한 기술과 지식재산(IP)을 보유한 기업과 협력하는 형태로 전환해야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대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이사장은 “대기업은 시장 플랫폼을 제공하고 중소기업은 기술혁신을 해야 한다”며 “이들이 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마트폰은 700개 부품이 결합한 제품으로 볼 수 있지만 7만개 특허가 모인 제품으로 볼 수도 있다”며 “생산기술과 연구개발(R&D), 마케팅 차별화는 사라지고 IP와 고객관계(CR)가 차별화 핵심요소가 됐다”고 밝혔다.

애플이 IP와 CR 차별화로 성공한 대표사례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기조발제에서도 특허협력 중요성이 강조됐다.

최준식 현대자동차 팀장은 ‘특허 공유를 통한 대중소 기업 상생협력 생태계 구축 전략’ 발표에서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것은 기업이 탐나서가 아니라 기업이 가진 특허가 탐났기 때문”이라며 “구글 사례처럼 특허를 매입하기 위한 인수가 늘어날 정도로 특허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협력사 기술보호를 위해 추진하는 특허전략도 소개했다. 협력사와 특허 공동출원, 기술자료 임치제도 도입, 인터넷 특허교육 등을 통해 상생을 도모한다는 설명이다. 특허기술을 중소·중견기업에 무상 이전하고, 특허개발 협업 활동으로 핵심기술 특허망을 형성해 특허수익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특징이다.

두 번째 기조발표를 한 윤준원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장도 중소기업과 특허 공유가 창조경제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윤 센터장은 “혁신센터를 통해 LG전자 특허 5만2000건, 정부 출연연구소 특허 1600건 등 많은 특허를 중소기업에 공개했다”며 “단순 공개를 넘어 LG전자를 중심으로 한 특허 전문가 4명이 상주하며 공개한 특허를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중소기업을 찾아가 특허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원투원 케어’ 프로그램도 가동을 시작했다.

윤 센터장은 “국가 차원의 IP허브 구축이 필요하다”며 “IP 원스톱 서비스는 물론이고, 대기업과 출연연이 보유한 특허를 중소기업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창조경제 생태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행사를 주관한 이정훈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장은 “국가 간 치열한 경쟁에서 특허 협력은 필수”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자신을 지킬 공격무기가 있어야 하고, 일정한 힘이 있을 때 상호조약으로 원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협회장은 “IP 관련 투자는 꾸준히 늘려야 한다”며 “사업목표에 따른 기술전략과 특허전략을 세우고, 미리 준비하는 길만이 치열한 비즈니스 전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