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에너지저장장치(ESS)가 국가 전력망에 실시간 연동된다. ESS가 사실상 대형 발전소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국전력은 지난 10일 경기도 안성시 한전 서안성변전소에서 주파수조정(FR)용 ESS 설비 준공식을 가졌다. 국가 전력계통에 연동해 기존 화력·가스발전소 역할을 대신하는 첫 프로젝트다. 한전은 지난 2013년 수립한 ‘ESS 종합 추진계획’에 따라 지난해 570억원을 투자해 서안성변전소(28㎿)와 신용인변전소(24㎿) 두 곳에 총 52㎿ 규모 FR용 ESS를 구축했다.

저장했던 대용량 전력을 필요할 때 언제든 쉽고 빠르게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ESS 장점을 활용해 기존 석탄·가스 원료 발전소 ‘주파수 조정’ 기능을 대체하게 된다. 전력계통 주파수가 기준 이하로 떨어지거나 상승하면 ESS 충·방전 기능을 활용해 표준 주파수를 유지한다. 이 때문에 국가 전력망 안정적 운영과 발전설비 운영에 따른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ESS는 전력품질 향상, 전력계통 안정화 등 활용이 무궁무진한 창조경제 핵심 분야”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다양하게 참여하는 사업으로 한전은 ESS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우리 기업 동반성장과 해외 동반진출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에는 삼성SDI, LG화학, LS산전, LG CNS 등 대기업을 포함해 코캄, 이엔테크놀로지, 우진산전, 헥스파워, 우진기전, 카코뉴에너지 등 중소기업이 참여했다.
국가 전력망에 초대형 ESS가 투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해외 상용 사례 조차 드물다.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 대체 효과는 물론이고 에너지 신산업 발굴을 위한 기틀이 마련됐다.
이날 준공식을 앞두고 한전 FR용 ESS는 가동테스트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한전이 지난 한 달 간 실시한 ‘무중단 시험’ 기간 중 지난달 3일 11시 23분부터 34분까지 한빛 원자력발전소가 계통과 탈락되는 비상사태가 터졌다. 이때 한국전력연구원이 개발한 FR용 ESS가 자동 운영·제어 알고리즘에 의해 실시간 반응했다. 탈락 직후 9분 동안 서안성·신용인 변전소 내 ESS가 52㎿ 전력을 계통에 방전시키며 원전 정상 복귀를 지원했다. FR용 ESS가 없었더라면 연료비와 석탄·가스발전소 운영에 따른 수백억원 비용이 발생했을 상황이다.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정전까지 막을 수 있었다. 한전과 업계는 정식 계통을 앞두고 우리나라 첫 가동인 만큼 반신반의했던 두려움을 이때 떨칠 수 있었다.
한전은 앞으로 3년간 총 5680억원을 투자한다. 올해 200㎿ 규모 ESS를 포함해 2017년까지 매년 각 124㎿ ESS를 추가 설치한다. 2017년이면 총 500㎿ 규모 ESS가 기존 발전소 FR용 예비력을 대체하게 된다. 여기 투입되는 배터리만 약 200㎿h로 4인 가구 기준 약 1만7000세대가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대형 배터리나 전력변환장치(PCS)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 신규 시장이 창출될 전망이다.
한전은 발전기 출력효율 향상 등 에너지 이용효율을 높이는 한편 관련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FR용 ESS는 순간적 수요변동에 따른 주파수 변동을 막고자 운전 중인 발전기 출력 주파수를 조정해 공급 능력을 높이는 게 핵심으로 기존 발전기보다 주파수 조정 대응력이 신속한 장점이 있다. ESS는 교류변환 과정이 필요 없는 직류 상태로 전력 충·방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발전용 FR보다 처리 능력이 월등하게 앞선다.
한전 전력구입 비용도 획기적으로 절감된다. FR용 ESS는 우리나라 FR시장 약 40% 수준으로 연간 약 3200억원 전력구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류를 보충하기 위해 발전량 약 5%를 석탄과 LNG 등 고원가 원료 발전기를 가동시켜 공급능력을 조절했다. 연간 1.1기가와트(GW)를 확보하는 데 약 6000억원 이상 발전소 운영비용이 발생했다. 이를 ESS로 교체하면 연간 비용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셈이다.
이 때문에 초기 비용이 좀 부담스럽더라도 장기적으로 경제성이 높아 미국과 유럽 등에서 ESS를 채택한 FR시장이 열리고 있다. 참여 기업은 이번 한전 FR사업 레퍼런스를 활용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한전은 사업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트랙 레코드를 제공하기 위해 제품을 보유하지 않은 기업 참여를 제한하고 한 개 기업이 한 개 이상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실제 경쟁력 있는 업체를 발굴해 이들의 해외 진출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