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3월 6일 모토로라가 개발한 ‘다이나택 8000X’가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휴대전화 시대가 열렸다. 무게 450g, 충전 10시간, 통화 35분에 부피가 크고 무거워 일명 ‘벽돌폰’으로도 불렸지만, 3995달러에 달하는 비싼 가격에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다. 특히 적용된 배터리 무게, 부피, 용량 등을 살펴보면 배터리 기술이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배터리 기술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꾸준히 발전해왔으며,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이 융·복합돼 에너지저장장치(ESS)라는 모습으로 에너지산업 분야 핵심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ESS는 전기를 대용량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해 전력이용 효율을 높여주는 시스템이다. ESS를 활용하면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원 활용도를 높이고, 불규칙한 출력을 양질의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주요 에너지 강국은 이미 핵심 성장동력으로 집중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신산업을 이끌 핵심기술 중의 하나로 ESS를 선정하고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심각한 기후변화로 화석연료에 제약이 많아지면서 신재생 에너지, 스마트그리드 스테이션, 마이크로 그리드, 전기자동차 등 새로운 시장과 산업이 창출되고 있으며 ESS는 이러한 기술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ESS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활용도와 경제성을 고려한 모델을 우선 공략해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도 만들어야 한다. 태양광·태양열·지열·풍력·지압·진동에너지 등 일상에 퍼져 있는 수많은 에너지원을 쉽게 저장할 수만 있다면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기존 에너지 소비 패턴도 바꿀 수 있다. 청정자원을 활용한 ‘발전-저장-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에너지 혁명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한국전력은 주파수 조정용으로 서안성변전소에 28㎿, 신용인변전소에 24㎿를 각각 설치해 ESS 시장 문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시장이 형성되면 가격하락과 기술개발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응용상품도 개발도 가능하다. 이미 많은 기업이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가격 또한 매년 10% 정도씩 낮아지고 있다.
국내 배터리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충전시간과 부피를 보다 줄이고 출력을 높일 수 있어야 다양한 상품에 응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리튬이온 배터리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재기술 개발에도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ESS는 배터리만의 기술이 아니다. 배터리 소재기술과 전력변환시스템(PCS)의 전력전자기술이 융합해야 다양한 상품개발이 가능하다. 궁극적으로는 시스템 통합과 같은 소프트파워 기술로 미래 먹거리를 창출해야 한다.
청정에너지원을 활용한 분산전원으로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면, 기피시설로 인식되는 원전과 송전탑을 없앨 수 있다. 도서지역에는 디젤발전기의 검은 연기와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지고, 매연 없는 전기차가 대도시 빌딩사이를 지나갈 것이다.
ESS는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드는 신기술인 만큼 성능검증, 경제성 등을 꼼꼼하게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에너지 신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순발력 있는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시장선점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기업 이기와 편견을 버리고 국가경쟁력을 생각하는 큰 흐름 속에서 산학연이 한데 뭉쳐 시장선점 골든타임을 잡기 위해 긍정의 힘을 모아야 한다.
원영진 전기저장장치연구회 위원장 wonyoung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