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주총을 앞두고 삼성물산·제일모직은 물론이고 삼성그룹 전체가 초비상이다. 지난 주말에는 삼성물산 전 임직원이 국내 소액투자자를 대상으로 합병 당위성을 알리는 홍보활동을 벌이는 등 사활을 걸고 합병 주총에 임하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삼성과 엘리엇 가운데 어느 한쪽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합병이 무산됐을 때 삼성이 받는 충격이 합병이 성사됐을 때 받는 엘리엇 충격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양측은 모두 양보 없는 한판을 벼른다면서 최악 경우에 대비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플랜B가 없다는 말이다.
엘리엇은 합병이 성사된다고 해서 크게 밑지는 일은 없을 전망이다. 이미 배당성향을 30%로 확대하고 주주권익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주주 가치 제고방안이 나왔고 주가도 매입 때보다 상당히 오른 상태다. 여기에 합병 무산 시 발생할 주가 급락 대비책도 세워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헤지펀드는 주가 상승 시 주식 공매도·주식선물 매도를 통한 이익 확정을 해뒀을 수 있다”며 “가정이지만 이러한 이익 확정은 파생상품 시장에서 흔히 쓰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백 연구원은 “헤지펀드는 추가적인 주가 급락이 있더라도 충분히 손실을 보지 않거나 추가적인 이익을 거둘 수 있다”며 “합병 무산 시 주가하락 피해는 일반 주주에게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엘리엇은 또 합병이 성사되면 각종 소송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2건 소송을 걸어 패했지만 항고 의사를 밝힌 상태다.
반면에 삼성물산은 합병이 무산되면 당분간 주가 하락에 내홍을 겪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합병비율을 조정해 바로 다음 주총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삼성물산은 플랜B는 없다는 상황이다.
지배구조 안정화가 최우선 목표라 하더라도 삼성이 실패 부담을 딛고 바로 합병을 재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방법으로 지배구조 안정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본질은 삼성물산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4.06% 확보다. 삼성물산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4.06%는 8조1200억원(삼성전자 시가총액 200조원 가정) 규모다.
김준섭 유진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삼성그룹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고려할 때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지주회사 격인 제일모직으로 넘길 가능성이 높다”며 “문제는 제일모직이 8조1200억원을 일시에 조달하기엔 무리라는 점으로 조달 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삼성물산에 삼성전자 지분은 무수익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제일모직 자금 조달 방안이 대규모 차입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외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빠르게 추진 중이던 지배구조조정 속도는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할 수 있는 시점을 감안하면 2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민기자 s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