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여부를 가리는 주주총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삼성 측과 합병을 반대하는 엘리엇 매니지먼트 우호지분 확보 경쟁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승부는 여전히 안갯 속이다. 다급한 쪽은 삼성이다. 합병에 실패하면 사실상 재추진이 불가능하고 양사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반면에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을 유지하며 상당기간 경영에 간섭할 수 있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삼성 근소한 우세…승부 예측은 이르다
김신 사장은 15일 수요사장단 회의 후 “한 표가 중요한 상황”이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장기적인 주주가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확신을 가지고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합병을 반대하는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우호지분 확보 경쟁이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최근 3년간 삼성물산 정기 주주총회 주주참석률은 60% 선이다. 하지만 사안 중요성을 감안하면 참석률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사장은 “당초 참석률을 65%로 예상했으나 최근 관심도가 높아져 최대한 참석률을 높게 잡고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병안이 가결되려면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전체 주주 3분의 1 이상이 필요하다. 참석률을 70~80%로 가정하면 찬성 46.7%~53.3%가 필요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41%)과 각 계열사 지분을 합친 삼성그룹 특수관계인 지분은 13.82%다. 삼성물산 자사주를 매입하고 백기사로 나선 KCC(5.96%)와 최근 찬성 의견을 밝힌 하나UBS자산운용(0.02%), 국민연금 등 지분을 합하면 확실한 찬성 우호지분은 32% 내외다. 반대 의견을 공개 표명한 주주는 7.12%를 보유한 3대 주주 엘리엇과 메이슨캐피털(2.2%), 일성신약(2.20%), 캐나다연기금(0.15%)으로 12% 수준이다.
삼성 측은 최고 22%, 엘리엇은 15%가량을 추가로 더욱 확보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키는 부동층인 소액주주와 해외투자자가 쥐고 있다. 11.05% 국내 기관투자자는 대다수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26.41% 외국인 투자자 가운데서는 반대 의견 보유 비율이 다소 높을 것이란 게 일반적 시각이다. 24.43%에 달하는 기타 소액주주 찬반 위임 현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우호지분 확보전에서는 삼성 측이 다소 앞서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알려진 우호지분 확보 비율이 높은데다 최근 상당수 소액주주 및 해외투자자 지분확보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주주로부터 확보한 찬성 위임장은 10%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에 이어 소액주주 민심을 잡으면서 합병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 상태다.
김 사장은 최근 “국민연금이 찬성하면 확실히 이길 수 있다”며 “일부 외국인 투자기업에서도 찬성표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소액주주, 외국인 투자자 우호지분 확보 현황을 감안한 발언으로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면 사실상 안정적으로 합병에 성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도 15일 “(찬반대결에서) 큰 차이로 이겨야 유리한 고지에 서서 앞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서 “국내 기관은 아주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찬성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급한 삼성, 표정 감춘 엘리엇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 측은 지배구조 개편 및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상당한 차질을 겪게 될 전망이다. 삼성 측이 합병을 원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성장 한계에 직면한 삼성물산은 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물산은 건설·상사 부문에서 모두 성장 정체를 겪고 있다. 건설 부문에서는 호주 로이힐 프로젝트를 끝으로 사실상 대형 수주를 확보하지 못했다. 로이힐 프로젝트는 2013~2014년 이익을 견인했다. 분기별 매출은 약 6000억원 규모다. 오는 10월 완공되면 사실상 실적 감소가 불가피하다. 중동, 아시아 시장 신규 수주 경쟁에서는 엔저로 일본 강세가 이어지고 있고 국내 건설시장에서 연간 만세대 규모를 공급하며 2조원 매출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공급세대는 319가구에 그쳤다. 상사 부문 또한 철강, 화학 등 주력 트레이딩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감소하는 추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병을 지배구조 재편의미로만 보는 시선이 강하지만 삼성 측은 합병을 통해 성장 정체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합병이 실패한다면 지배구조 재편과 더불어 종가 이미지를 갖고 있는 두 기업 경영이 지속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합병에 실패하면 삼성물산 타격이 특히 클 것”이라며 “건설과 무역이라는 산업이 1980~1990년대엔 국가와 함께 산업을 선도했지만 이젠 사양산업화 구간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대로 두면 주가, 주주가치 모두 더욱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급한 삼성과 달리 엘리엇은 표정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합병이 무산 또는 성사돼도 사실상 엘리엇이 입는 손실은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합병이 성사되면 엘리엇 지분율은 2%대로 떨어진다. 하지만 이를 정리하지 않고 경영에 참여하며 영향력을 지속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소액주주 잡기 총력
삼성 측과 엘리엇이 막판 우호지분 확보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양측은 감성에 호소하는 선전까지 불사하고 있다. 철저하게 득실 위주 선택을 하는 기관보다 소액주주 표심 잡기를 목적으로 한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소액주주 비중이 23%에 달하는 상황으로 이들 선택이 주총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
삼성물산은 13일 100여개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했다. “합병을 통해 바이오 사업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 대표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며 10만명에 육박하는 소액주주에게 직접 호소하고 나섰다.
삼성물산은 현재 1000주 이상 보유한 주주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위임장을 받고 있다. 광고 이후 위임 문의 전화가 두 배 이상 늘었고 이 가운데 90% 이상이 의결권을 위임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엘리엇은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을 직접 전면에 내세워 여론전을 펼쳤다. 엘리엇은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폴 싱어 회장은 2002년 월드컵 기간에 붉은악마 복장을 한 채로 한국 대 독일전 당시 한국을 응원했다”며 당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해외 자본의 국내 자본 유출 및 경영 방해 여론이 일자 이를 해소하고 합병비율이 부적절해 주주가 피해를 봤다는 당초 주장의 설득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양측이 확보한 우호지분율이 큰 차이가 없고 부동층 지분율이 높아 소액주주 선택이 주총결과에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소액주주 설득을 위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데 양측이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