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 이른바 ‘먹방’이 유행이다. 내가 아닌 남이 열심히 음식을 먹으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시간을 쓰고 열광하며 심지어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이제는 먹방 시대를 넘어 남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즐기는 ‘쿡방’이 인기다. 기존 요리 프로그램이 비법을 전수하고 설명하는 방송이었다면 쿡방은 경력이 오래된 요리연구가를 ‘셰프’라 부르며 연예인처럼 동경하고 환호를 보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요리를 시작했을까. 식재료를 지지고 볶고 굽고 찌고 삶고 끓이는 행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인류학 교수는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혀 먹음으로써 인류 진화가 촉진됐다며 ‘화식 진화설’을 주장한다. 1990년대 아프리카에서 야생 침팬지를 연구하던 랭엄 교수는 주식이 되는 열대과일과 덩이뿌리를 시식했다가 깜짝 놀랐다. 쓴맛이 강하고 질겨 제대로 씹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랭엄 교수는 10년이 넘는 증거 수집 끝에 2009년 요리 중요성을 담은 책 ‘요리 본능(Catching Fire)’을 펴냈다.
랭엄 교수는 식재료를 불에 익혔을 때 맛과 영양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실제로 날달걀을 섭취했을 때 흡수되는 단백질은 50% 수준이지만 익혀서 먹으면 90% 이상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생식을 고집하면 낮은 소화 흡수율로 체중이 계속 감소하며 결국에는 번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체 조건이 나빠진다.
불을 이용해 요리를 하는 것은 여러 장점을 준다. 첫째는 소화가 쉬운 상태로 식재료가 변화하면서 더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어 체력적으로 유리하다. 뇌는 근육보다 22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인류는 다른 동물보다 훨씬 큰 뇌를 가지고 있다. 음식을 익혀 먹지 않고는 유지가 불가능한 구조다.
둘째는 요리는 식재료를 연하게 바꿔 섭취와 소화에 필요한 시간도 그만큼 줄어든다. 침팬지는 주간 활동시간의 절반에 달하는 6시간을 매일 음식을 씹는 데 소비하지만, 인간은 1시간 정도만 씹으면 하루 세 끼 식사를 마칠 수 있다. 요리 덕분에 소화시간도 짧아져 노동시간도 그만큼 더 많이 확보하게 됐다.
셋째는 음식 활용도가 높아진다. 식재료를 불에 익히면 영양분이 파괴된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성이 제거되는 이득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부패에 관여하는 세균과 수분을 제거해 보존기간도 늘어난다.
불에 익힌 식재료가 맛과 영양 면에서 우수하다면 동물도 요리된 음식을 선호할까. 미국 하버드대와 예일대 연구진은 랭엄 교수 주장을 토대로 최근 2년 동안 아프리카 콩고 야생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날고구마 조각을 플라스틱 용기에 넣고 흔들며 1분 동안 기다리면 마치 요리가 된 것처럼 익힌 고구마로 바꿔주는 장치를 설치하고 반응을 지켜봤다.
연구진이 제공한 날고구마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지 않고 1분을 기다려서 익힌 고구마로 바꿔간 침팬지 비율은 90%에 달했다. 심지어 나중에 요리해 먹기 위해 날고구마를 쌓아두는 모습도 보였다. 침팬지가 맛과 영양을 위해서라면 인내심을 발휘할 줄도 알고, 식재료를 변화시키는 과정과 필요성도 문제없이 이해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등산을 하다보면 ‘산에 사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글귀를 보게 된다. 인간이 먹는 음식은 대부분 불에 익힌 식재료여서 섭취와 소화에 편리하다. 그러나 동물은 인간처럼 조리기구나 요리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등산객이 주는 익힌 음식에 길들여지면 야생에서 생식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이 크다. 요리는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