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17일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공식 추인받으며 9월 1일 새 통합법인으로 출범한다. 2020년 매출 60조원, 세전 영업이익 4조원을 내건 통합 삼성물산 출범은 ‘이재용 시대 삼성’ 개막에 한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합병 성공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 지배력 강화에 한 단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통합법인은 현 제일모직이 맡고 있는 사실상 그룹 지주사 역할을 물려받아 전자와 금융 양대 핵심 사업 장악력을 높였다. 지배구조를 기존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제일모직’에서 ‘통합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으로 단순화해 경영권 분쟁 소지도 줄였다.

통합 삼성물산 출범은 삼성 3세 경영승계를 위한 ‘화룡점정’이라는 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전기, 삼성SDI 등 전자부문 계열사 간 추가 재편설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지난 2013년 9월 옛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의 옛 제일모직(현 삼성SDI) 패션사업 인수로 시작된 2년여 재편과정 마침표 성격이 강하다.
대규모 재편작업을 대외적으로 공인받으며 정당성도 확보했다. 지난해 11월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간 합병 무산 선례가 있지만 규모 면에서 차이가 크다.
통합 삼성중공업이 내걸었던 2020년 연 매출 40조원은 통합 삼성물산 3분의 2에 불과하다. 당시에는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이 실패 원인이었지만 이번에는 해외 투기자본 공격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버티고 있었다. 이를 끈질긴 주주설득으로 막은 건 사업재편 당위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삼성 주요 계열사 체질 개선에는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통합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51.2%를 보유하게 돼 삼성그룹 미래 신수종 사업 ‘바이오’ 지배력이 커지게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4분기 6500억원을 투자하는 등 2020년까지 세계 최대 바이오 위탁생산 체제를 갖춰 매출 2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올리는 세계 1위 업체 도약을 목표로 한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은 “삼성물산 플랜트 시공, 제일모직 바이오·공학 노하우가 세계 1위 달성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통합 삼성물산 출범이 삼성 바이오 사업 강화에 도움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통합 삼성물산 출범 성공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안정성, 미래 신수종 사업 활성화 기반을 이끌어냈다. 삼성그룹은 이에 바탕을 두고 전자와 금융 강화에 공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9월 개시 예정인 삼성 핀테크 ‘삼성페이’가 우선 꼽힌다. 갤럭시S6 시리즈 이후 모델부터 전면 적용되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으로 삼성전자 기술이 금융사업 강화로도 연계된 본격 사례다. 안드로이드페이, 애플페이 등과 달리 기존 마그네틱 단말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점이 이달 시범 서비스에서 호평을 받는 등 향후 삼성 중심 핀테크 생태계 구축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삼성증권,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금융 계열사도 잇따라 해외로 진출, 글로벌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증권은 중국 증권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현지 자본시장에서 자본조달, 운용 능력을 확보하고 있고 삼성생명, 삼성화재도 운용 기금 수익률을 강화하며 지속가능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전자 계열사는 삼성전자 의존에서 탈피해 자생력 확보에 나선다. 삼성전기가 올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모터 사업을 접고, 전자가격표시기(ESL), 파워모듈, 튜너 등을 분사하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삼성SDI가 전기차용 배터리에 집중하는 모습은 “잘하는 사업에 집중하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내세운 경영방침과 궤를 같이한다.
인수합병(M&A)과 사업 제휴를 활용한 경쟁력 강화도 점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인수한 업체는 8개로 지난 5년간 삼성그룹 전체 M&A 14건의 절반을 넘는다. 국적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기업에는 적극 투자하며 이전보다 공격적인 업계 우군 확보도 주목된다. 이선종 삼성벤처투자사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투자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삼성그룹이 지난 2010년 발표한 ‘5대 신수종 사업’ 및 삼성전자가 지난 2010년 설정한 ‘비전 2020’ 개편도 점쳐진다. 신수종 사업은 이차전지, 모바일 솔루션 등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각각 해외사업 철수와 규모 축소를 택해 군살 빼기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비전 2020은 스마트폰 시장 구도 변화 속에서 그룹 대표 계열사 미래를 찾아야 한다.
※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일지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