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70%에 달하는 찬성으로 가결됐다. 당초 박빙 승부를 예상했던터라 모두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의 마지막 퍼즐인 이번 합병을 성사하지 못하면 상당한 출혈을 감내해야 했다. 성장한계에 직면한 계열사 경영 악화는 물론이고 복잡한 순환출자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회도 다시 찾기 힘들었다.
다급했던 삼성 승리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소액주주가 던진 찬성표다. 20%가 넘는 소액주주 대다수가 합병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합병비율을 문제 삼은 엘리엇 주장에 동조하기 더 쉬웠다. 합병비율을 조정하면 통합 법인이 출범할 때 주주가 받는 주식수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삼성 손을 들어줬다. 합병 법인 장기적 성장성에 주목한 주주도 있지만 외국계 자본 국내 기업 경영 침해를 우려해 막판에 의견을 바꾼 주주도 있다. 합병을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지만 찬성표를 행사한 주주도 있었던 셈이다. 절체절명 위기에 놓였던 삼성은 이들에게 큰 빚을 졌다.
삼성은 합병이 성사되면 주주 권익 보호 담당위원회를 설치하고 영업이익의 0.5%를 사회공헌 기금으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외부인을 절반 이상으로 채운 거버넌스 위원회도 만든다. 삼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처음이다. 이런 대책이 엘리엇과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은 씁쓸한 대목이다.
합병안 가결을 낙관할 수 있었다면 소액주주와 적극적 스킨십에 나섰을까. 이번 합병은 소액주주 소통 및 친화정책 강화 필요성을 알리는 사례가 됐다. 소액주주 주장과 요구는 배제된 채 경영진 의사만 반영돼 온 기업 경영 행태에도 경종을 울렸다. 이번 합병을 계기로 주주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다는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말에도 기대를 걸어본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