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업을 막론하고 토론회에서 현안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기자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소프트웨어 분야 토론회도 언제나 ‘거룩한 얘기’로 시작해 ‘잘해보자’로 끝을 맺었다.
지난 5월 통신장비 산업을 주제로 열린 ‘ICT 정책 해우소’도 마찬가지였다. 고사 위기에 처한 중소 통신장비 업계에 대한 정부 방침은 어정쩡했다. 이동통신사는 장비 업계의 절박한 하소연을 ‘징징거림’으로 치부했다. 상생을 위한 해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통신장비 산업 활성화 토론회’도 다를 바 없었다. 두 달이 지났지만 정부와 이통사는 기존 논리를 되풀이했다. 정부 당국자는 중간에 자리를 떴다. 장비업계와 쟁점이 된 이통사는 아예 참여하지도 않았다.
토론 패널로는 이통사 구매담당, 상생협력담당 임원이 참여해야 하는데 다른 분야 임원이 참석했다. 장비업계는 애로사항을 구체적으로 토로했다. 하지만 이를 듣는 사람도, 들어야 할 사람도 없었다. 제대로 된 토론이 될 리 만무했다.
모든 게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통사는 장비 업계 어려움을 알고 있으며 이통사 역시 힘든 상황이라며 이해를 요구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타협은 상대방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서 시작한다.
국회에서 관심을 보였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토론회가 여야 국회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렸기 때문은 아니다. 토론회를 주최한 국회의원은 으레 인사말이나 축사만 하고 자리를 빠져나가 김이 새게 만든다.
이날 토론회에서 권은희 의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발표를 경청하고 중간중간 메모하며 여러 차례 질문도 했다. 통신장비 관련 정부 정책 견제나 예산 책정, 제도 마련 부분에서 기대감을 갖게 했다.
아직 달라진 건 없다. 정부와 이통사 태도변화가 필요하다. 작은 변화가 지속돼 국내 통신장비 산업을 지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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