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인터뷰 요청에 망설였다. “가뜩이나 현안에 입바른 소리를 해 못마땅하게 보는 측이 많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학자가 소신에 따라 정책당국에 쓴소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해 일정을 잡았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를 7월 17일 오후 3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 미디어관 404호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붉은 티셔츠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평소 정장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 6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독임제 부처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론은 없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산·연·관을 두루 거친 학자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학위가 2개다. 그는 SK에서 13년간 정보통신 분야 신규 사업을 담당했고 서울시 정보시스템담당관으로 1년 2개월간 관료로 일했다. 한국정보통신대학교(현 KAIST) 경영학부 교수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을 거쳐 2008년 3월부터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한국미디어경영학회장을 맡고 있다.
그와 냉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반가량 ICT 전담조직 신설과 미디어산업 위기 타개 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ICT 전담부처 신설을 주장했는데 이유가 뭔가. 선거철도 아닌데.
▲잘못한 정책이 있으면 누군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학자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ICT 전담부처 신설은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자의 공약이다. 그건 사회적 합의다. ICT는 한국경제발전에 기여한 비중이 높다. 사회 가치 측면에서도 그렇다. ICT는 한국경제의 장남이다. 야구로 치면 선발투수다. 아직은 ICT를 대신할 구원투수가 없다. 구원투수가 없는데 정부는 ICT를 홀대하고 그로 인해 ICT 위상은 추락했다. 창조경제는 현 정부 국정지표다. 아직까지는 ICT가 창조경제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런 역할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한다. 이명박정부는 독임부처인 정보통신부를 폐지했고 기능을 분산시켰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합의제여서 각종 ICT정책 추진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총력체제가 안 됐다.
〃 ICT 업무를 지금은 미래창조과학부가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미래창조과학부가 나름대로 ICT 진흥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노력하는 것에 비해 성과는 미흡하다. 연관 부처가 많고 업무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미래부 장관이 부처 간 협업이나 정책 조율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 미래부가 과학과 ICT를 담당하다 보니 양측 모두 정부 정책에 불만이 많다. 이게 현실이다.
-현 ICT 조직 문제점은.
▲다 아는 이야기다. 구조와 기능이 분산돼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 기능적으로도 전문성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방송통신과 미디어 전문가가 없다. 정부가 전문가 없이 어떻게 관련 정책을 제대로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나. 최근 대표적인 게 700㎒ 주파수 배분이다. 과거엔 정보통신부가 주무부처였다. 정책을 합리적으로 소신껏 추진했다. 지금은 미래부와 방통위, 국무총리실 3개 기관이 주파수 문제를 다룬다. 통신 주파수는 미래부가, 지상파는 방통위가 그리고 최종 심의는 국무조정실 주파수심의위원회가 담당한다. 이번 주파수 배분에서 보듯 부처 간 갈등이 발생하고 사사건건 부딪친다. 의사결정도 제때 할 수 없다. 방송도 지상파는 방통위가, 유료방송은 미래부가, 방송정책은 문화부 소관이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부처 간 주도권 다툼과 나눠 먹기식 결과다. 여기에 국회가 과잉 개입했다. 정부 정책은 실종되고 정치 과잉 부작용만 속출한다. 700㎒ 배분 구조과정이 좋은 예다. 국회가 지상파 입장을 대변하자 세계 어느 국가도 하지 않은 지상파에 주파수를 배분하는 안이 나왔다.
-앞으로 ICT 업무를 어떻게 통합해야 하나.
▲ICT와 과학을 분리해야 한다. ICT 기능과 문화부 콘텐츠와 국무조정실 주파수 정책을 한 부처로 통합해야 한다. 네트워크와 디바이스, 콘텐츠를 일원화한 독임부처를 만들어야 한다. 장관은 자나 깨나 ICT만 생각해야 한다.
-역대 정부마다 조직개편을 했다. 어떻게 보나.
▲그 정부의 정치 철학에 맞게 조직을 개편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정책 연속성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 조직은 바꿀 수 있지만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전임 정부 정책을 무조건 부정하는 건 옳지 않다. 변화는 시도하되 기본은 지켜야 한다. 정부 조직개편은 목적이 정당하고 방향은 진실해야 한다. 정부조직은 국민이나 기업체 같은 정책 수요자 요구에 맞춰야지 정책 공급자 관점에서 개편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해법은 뭔가.
▲정부 조직개편을 벼락치기로 하면 안 된다. 그동안 정부조직개편은 인수위가 밀실에서 했다. 앞으로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
-현 정부 창조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총론은 좋다. 하지만 각론은 부실하다. 목적은 좋은데 방향은 비창조적이다. 창조경제는 개념이 모호하다. 창조산업, 창조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통신과 방송이 융합하면서 갈등도 심한데.
▲새로운 상생의 미디어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창의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지금 방통위는 합의제다. 상임위는 정치적 배분이고 갈등구조다. 앞으로 통신과 방송 산업 간 융합으로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그러자면 영역싸움만 할 게 아니라 통신과 방송이 주고받는 합리적인 거래를 해야 한다. 700㎒ 주파수도 통신용으로 경매하면 막대한 돈이 들어온다. 그 돈을 방송 콘텐츠 개발이나 수신료 지원과 같은 방송계 숙원사업에 대폭 지원하는 방안도 있다. 큰 틀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가 패키지 딜을 해야 한다.
-신문의 뉴비즈니스 모델은.
▲신문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정확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2014년 3월 발표한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는 좋은 참고자료다. 먼저 독자가 기다리는 고품질 기사를 서비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스타 기자를 키워야 한다. 요즘은 인기 걸그룹도 열광팬을 몰고 다닌다. 신문사도 스타 기자가 쓴 기사를 열독하는 이른바 충성도가 높은 열혈 독자를 확대하고 이들을 상대로 팬덤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전자신문은 그런 면에서 유리하다.
-정부가 완화해야 할 규제는.
▲우리는 사전규제가 너무 많다. 통신이나 미디어 진입 시 인허가, 소유구조 같은 규제다. 통신 요금도 인가제였다. 이런 규제가 많으면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 이건 축구심판이 운동장에서 누구는 어디로 공차고, 누구는 어디로 뛰라는 식이다. 사전규제는 없애고 사후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앞으로 ICT산업의 뉴비즈니스 전략은.
▲비즈니스 세계는 정글이다. 국내기업은 앞으로 세계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산업 경쟁력이 넘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한국이 자랑하던 게임 산업은 중국이 강세다. 정부는 진흥과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외국기업과 체급 싸움에서 밀린다. 우리는 내수시장 확대와 동남아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ICT 분야 콘텐츠 유통을 담당하는 종합상사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과거 우리 기업은 종합상사를 만들어 해외에 제품을 수출한 경험이 있다.
-인터넷 기반 뉴미디어 발전모델은.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지만 우리 언론은 동물원에서 산다. 5년 안에 언론환경은 사파리 개념으로 변한다. 국제 경쟁을 하려면 국내에 5조원 매출을 올리는 대형 미디어 기업 4~5개를 육성해야 한다. 통신과 포털, 케이블사업자, 지상파에서 대형 미디어기업을 하나씩 만들 수 있다. 나는 신문사가 연합해 포털을 만들어 수익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업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포털에 뉴스를 제공했다. 결국 포털 영향력만 커졌다. 브라질은 150개 언론사가 연합해 구글에 뉴스 제공을 거부했다.
-하고 싶은 말은.
▲초등학교 때부터 인터넷에 악성댓글을 달거나 불법복제를 하지 않도록 사이버 세상에 적합한 미디어교육을 해야 한다. 콘텐츠 불법복제율이 30%에 달한다. 미디어도구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교육을 해야 밝은 인터넷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좌우명과 취미는.
▲학자 이전에 올바른 선생이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영감을 주는 선생이 되자’가 좌우명이다. 수업 첫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한다. 젊은이를 변화시키는 게 나는 좋다. 공으로 하는 운동은 다 좋아한다. 음악과 영화감상도 즐기는데 시간이 없다.
그는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와 전철을 주로 이용한다. 과제물을 채점하기 위해서다. 그는 과제물을 많이 내주는 교수로 유명하다. 흔한 말로 다른 교수에 비해 두세 배, 학생들에게 ‘개고생’을 시킨다는 것. 대신 학점은 후하게 준다. 학생이 고생한 만큼 학문 만족도는 높다고 한다.
그는 마르퀴스 후즈 후, 국제인명센터와 같은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됐다. 지난 2009년 이후 올해까지 연속 마르퀴스 후즈 후에 올랐고 세계 100대 교육자와 21세기 탁월한 지식인 2000인에도 게재됐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좋다는 그의 말에 진심이 진하게 묻어났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