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엔터프라이즈 출범 후 매각 금지, 타사 인수는 OK`

‘헤어져도 경쟁하지 않고 협력한다.’

오는 11월 1일 두 개 회사로 분리되는 HP와 HP엔터프라이즈 사이에 맺어진 협약 내용이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23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HP는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분사 계획을 공식화했다. 공시에 따르면 HP는 오는 11월 1일 프린터·PC 사업부가 포함되는 지주회사 격인 ‘HP(HP Inc.)’와 기업용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서비스를 담당하는 ‘HP엔터프라이즈’로 분사할 예정이다. 2011년 취임한 현 최고경영자(CEO) 멕 휘트먼이 휴렛패커드 엔터프라이즈 CEO를 맡고, 현재 PC·프린터 사업을 총괄하는 디온 와이즐러가 HP를 이끌게 된다.

오는 11월 1일 출범하는 HP엔터프라이즈의 새로운 기업 로고.
오는 11월 1일 출범하는 HP엔터프라이즈의 새로운 기업 로고.

미국 실리콘밸리 1호 벤처기업으로 꼽히는 HP가 76년 만에 별도 회사로 나뉘는 상황을 맞게 됐지만 양사는 관계 단절만큼은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HP가 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양사는 향후 3년간 경쟁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사업 충돌로 독자 생존에 서로 방해가 되지 말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양사는 분사 후 6개월 동안 상대 회사 인력도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 해고된 직원은 예외로 뒀다.

HP와 HP엔터프라이즈는 ‘상호불가침’을 이야기하면서도 구매나 영업에서는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해 눈길을 끌었다. 회사가 둘로 나뉘면서 위축될 수 있는 ‘바잉파워’와 매출 감소 등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아울러 양사는 출범 이후에도 특허, 지식재산권을 공유하기로 했다.

HP가 SEC에 제출한 자료 중에는 HP엔터프라이즈 매각을 금지한 내용도 있다. 분사 후 2년간은 HP엔터프라이즈를 매각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세금 문제가 이유로 알려졌다.

매각 대신 성장을 위해 다른 기업 인수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겨 EMC와 합병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EMC는 세계 최대 스토리지 기업으로, 지난해 HP와 EMC가 합병을 논의했지만 가격에 이견을 보여 불발된 바 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