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유럽 한인과학기술인 학술행사를 다녀왔다. 짧은 기간 스위스, 프랑스, 독일을 돌아보며 ‘이들은 어떻게 끊임없이 지속 발전해 온 것일까? 그 꾸준함과 여유로움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유럽이 보유한 자원과 환경을 바탕으로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켜 온 열정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행사가 열렸던 스트라스부르그는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완성된 도시다. 유럽의회가 자리하고 있는 알자스 경제 문화 중심지다. 오래된 중세 시대 건축 양식과 더불어 근대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발전했다. ‘마지막 수업’으로 교과서에 실릴 만큼 이름 있는 유럽 교통중심 도시다.
필자가 20여년 전 독일 작은 마을 슈베비쉬할이라는 곳에서 접했던 르네상스 시대 목조 건축물들이 아직도 도시 중심축에 건재해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작고 오래된 도시지만 전통과 문화를 나름대로 이어가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이 같은 국민 의식이 현재 스트라스부르그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닐까?
유럽 중에서도 사회간접 자본 투자가 오랫동안 지속된 국가 경쟁력과 그렇지 못한 국가 경쟁력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많다. 다시 말해 정부가 그 나라 문화, 전통, 경제, 환경 여건을 잘 고려해 사회간접 자본을 지속적으로 구축해 온 국가는 경쟁력을 확보해 국민이 윤택하고 여유로운 삶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번 출장길에 방문했던 스위스 최대 자연과학 및 공학연구소 폴 쉬에러 연구소(Paul Scherrer Institute, PSI)는 1960년부터 가속기 등 대형 연구시설에 투자해 온 세계적 연구기관이다. 지난 50년간 물리, 재료, 에너지 등 자연과학 분야 연구개발과 시설에 투자해 왔다. 최근에는 축적된 인프라와 경험을 활용해 방사선 의약품과 바이오 분야에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
가속기를 이용한 바이오 분야 혁신성과가 국가 경쟁력 확보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스위스와 같은 소국 입장에서 자국이 보유한 자원과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원하는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자원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적 네트워크를 이용하겠다는 전략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도 사회 인프라와 기술 확보를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 결과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추종자 역할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 갈 길이 아직은 멀지만, 부분부분 어느새 선도국 입장에 서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전통과 문화, 국민 생활환경에 기반을 둔 지속적 성장을 생각할 때다. 세계 선진국 과학기술 정책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따라가거나, 단기적 정치적 이해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고쳐나갈 때다.
요즘 몇몇 지자체에서 유럽식 노면 트램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유럽은 철도 중심 대중교통시스템을 기반으로 도시가 발전해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한 미국에서 트램이 유행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도시 성장 배경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사회 간접자본 투자가 정말 우리 사회를 지속 발전시킬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1970년대부터 본격 시작된 우리 연구개발 역사도 어느덧 불혹(不惑)에 이르렀다. 이제는 우리가 쌓아온 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심화시키고 필요한 경우에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창조적 융합을 이루어야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없는 스트라스부르그 의과 대학 강당은 매우 무더웠지만 기본에 충실하고 전통과 환경에 순응하는 삶이 이들을 훨씬 여유롭게 한다. 단순한 삶의 지혜지만, 본받을 만하다.
임용택 한국기계연구원장 ytim@kim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