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 롯데피트인 9층에 위치한 ‘K라이브’ 공연장은 지난해 개장 후 관객 8만여명이 몰렸다. 350석 규모 객석을 연일 가득 메운 셈이다. 관객 가운데 80%는 중국, 대만, 홍콩에서 온 관광객이다. 한류스타인 싸이, 2NE1, 빅뱅, 지드래곤 등이 펼치는 공연을 라이브처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와 3차원 입체 영상기술인 홀로그램이 결합한 덕분이다. 올해 초 문을 연 서울 강남구 코엑스 ‘SM타운’과 최근 제주에 문을 연 ‘플레이 케이팝 인 제주’의 원조 격이다. KT는 최근 중국 베이징과 저장성에 공연장을 설립한 데 이어 추가로 3군데 더 만들 예정이다.
홀로그램 공연장은 시간과 공간 제약을 뛰어넘어 무한 반복 재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크다. 배우나 가수 공연 중 부상 염려도 없고 여러 공연장에서 동시 상연이 가능하다. 2차원 스크린이 아닌 3차원 입체 영상을 접한다는 점은 실제 공연에 가까운 감동을 줘 또 다른 매력이다. KT는 K라이브 경제효과가 1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공연 관람 외 쇼핑, 관광이 결합한 것이다. 한류 콘텐츠가 기술을 만나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문화 콘텐츠, 기술과 결합해야 성장
홀로그램 공연장 외에도 기술과 문화 콘텐츠가 결합할 때보다 큰 경제효과를 가져다 주는 사례는 많다.
웹툰은 기술과 문화 콘텐츠 결합 대표적인 사례다. 웹툰 작가는 잘나가는 직업이 됐다. 인기작가는 원고료만으로도 억대 수입 반열에 오른다. 서비스업체도 올해 매출 100억원이 넘는 기업이 4~5개 업체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인기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로 판권이 팔려나간다. 그야말로 선순환 구조다.
최근에는 수출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네이버, 레진코믹스, 탑코믹스 등이 해외 시장에 나섰다. 아직 세계 시장에서 낯선 문화지만 모바일과 웹이란 플랫폼에 실려 우리 문화가 세계로 퍼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이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상황은 180도 다르다. 무료 다운로드 바람이 일면서 동네마다 있던 대여점이 문을 닫고, 수십개에 이르던 잡지도 폐간하면서 만화가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만화가들은 그릴 잡지가 하나둘 사라지는 것과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웹툰은 바로 만화가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플랫폼을 만나면서 생긴 기회다. 출판만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팝업, 동영상 등 다양한 효과를 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된 모바일로 세계 곳곳에 배포가 가능한 것은 플랫폼이 가져다준 변화다.
만화가 온라인 플랫폼과 결합해 웹툰으로 발전했다면 가상현실(VR)은 반대다. 온라인과 모바일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게임 콘텐츠가 온 몸으로 즐기는 체감형 기술을 만나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스크린 야구, 스크린 수상레저 등 체감 기술을 활용한 생활형 스포츠 콘텐츠도 VR 일종이다. 영화와 게임이 결합한 모바일 게임 콘텐츠는 아직 시도 단계지만 IT와 콘텐츠 제작력, 한류 파워 등 융·복합이 이뤄지면 거대 시장 형성이 가능하다.
페이스북이 지난해 2조1400억원(20억 달러)에 오큘러스 리프트를 인수하고 구글이 5억4200만달러에 매직립을 인수한 것도 VR 시장 미래를 내다본 결과다.
국내는 일부 중소기업이 가상현실 관련 스마트폰 연동 앱을 출시하고 있지만 자체 플랫폼 생산업체는 없는 상태다.
◇콘텐츠와 기술 융합 정부가 나서야
국내에서 콘텐츠와 기술 융합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정도다. 융합콘텐츠는 이야기를 풀어내 기술에 결합하는 창의적인 콘텐츠와 첨단기술이 합쳐져야 빛을 발하지만 이를 연결할 자본력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국내 콘텐츠 기업은 영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콘텐츠 기업 100개 중 97개사는 자본금 10억원, 매출 10억원, 종업원 10인 이하 영세기업일 정도다. 콘텐츠와 기술 결합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실정이다. 융합형 인재나 아이디어를 무대로 옮길 수 없는 공연장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미래 먹거리를 생산해 낼 수 없는 구조다.
최근 정부와 민간이 뭉쳐 청사진을 내건 문화창조융합벨트는 우리 문화 콘텐츠가 한 단계 진화하는 데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영세 콘텐츠 기업과 기술기업을 연결하면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 결합이 가능하다. 융합아카데미에서 길러낸 융합형 인재를 적재적소에 투입하면 창의적 아이디어는 배가될 수 있다. 일산에 세워질 공연장 역시 콘텐츠 융합 실험장이자 관객을 모으는 명소가 될 수 있다.
성장이 더뎌진 우리 콘텐츠 산업 전체로도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지난해 콘텐츠 매출액은 전년 대비 4.5% 증가했지만 지난 2012년 5.1%보다 증가세가 둔화됐다.
최보근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산업국장은 “문화 콘텐츠는 그간 우리 수출 경제를 이끌었던 반도체, 자동차, 조선을 능가하는 거대 시장”이라며 “우리가 가진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결합하면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