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최초로 혜성에 착륙한 탐사로봇 필레이가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이하 67P 혜성)에서 원시생명체의 씨앗으로 여겨지는 유기화합물을 찾아냈다.
사이언스지와 유럽우주국(ESA)은 30일(현지시간) 필레이 착륙 당시(지난해 11월) 보내온 풍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혜성에서 채취된 샘플 성분 분석을 담당하는 독일의 과학자팀 코사크는 “67P혜성 표면으로부터 9.6km 떨어진 상공, 초기 착륙지점, 최종 착륙지점에서 유기분자들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는 이들 유기화합물이 혜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16종의 유기화합물 발견...4종은 ‘생명체의 씨앗’ 유력 분자
과학자들은 필레이가 채취한 샘플 분석결과 이전까지 혜성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4종의 유기화합물을 포함, 모두 16종의 유기화합물 분자를 발견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 유기화합물 가운데 특히 주목받는 4종류는 메틸 아이소시안화 메틸(methyl isocyanate), 아세톤, 프로피온 알데히드, 아세타미드였다.
유럽우주국(ESA)은 30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코사크팀은 필레이의 67P 아질키아 지역 착륙시 로봇 아랫부분 튜브로 채취한 얼음성분이 드문 휘발성 먼지알갱이를 분석한 결과 초기태양계를 구성하는 16종의 원시물질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필레이의 윗부분에 장착된 계측기 중 프톨레미는 코마(혜성 주위의 성운(星雲) 모양의 물질)가스,증기,일산화탄소,그리고 포름알데히드를 포함한 이산화탄소 및 탄소를 띤 유기화합물을 감지해 냈다.
ESA는 “중요한 것은 이들 유기화합물 가운데 일부는 생명체의 구성성분인 아미노산,당,핵염기의 전(前)생물 합성(prebiotic synthesis)에 핵심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포름알데히드는 리보스의 형성에 관련돼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DNA같은 분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필레이의 작동상태와 현재 위치는?
필레이는 당초 예정됐던 부드러운 알갱이로 된 지표면과 그 아래 딱딱한 지층을 가진 아질키아 지역에 안착하지 못했다. 이 지점은 약 20cm 두께의 부드러운 알갱이로 덮여 있었다. 필레이는 착륙 과정에서 두번이나 튕겨져 나가면서 800m~1km 정도 떨어진 또다른 곳에 자리잡게 됐다. 이 곳이 아비도스 지역인데 딱딱한 지표면을 형성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필레이에 탑재된 7대의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에 근거해 필레이의 현재 위치를 추적해 주변 환경에 대해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필레이의 아주 정확한 위치를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필레이가 보내온 새로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로봇이 너비 1미터정도의 바위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 가운데 하나는 90cm정도 솟아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세탁기 크기의 자기 몸집만한 구덩이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장 피에르 비브링 남파리대 박사가 이끄는 ESA 사진팀은 “필레이가 바위와 솟아있는 지형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그늘진 곳에 가려져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필레이의 한쪽은 30cm 정도 깊이의 우묵한 곳에 걸려있고 다른 한쪽 면은 태양이 비치는 곳을 향하고 있으며 또다른 면은 위로 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구조물은 필레이가 부분적으로 태양빛을 받지 못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 때문에 필레이는 솔라패널을 통해 내부를 덥히고 전력을 공급받는 작업을 크게 제한받고 있다.
한편 필레이는 지난 해 11월 착륙 당시 어두운 곳으로 튕겨져 나간 후 솔라셀작동이 안돼 교신중단상태(동면)에 있다가 7개월 만인 지난 달에야 태양빛을 받으면서 깨어났다. 세탁기 크기의 혜성탐사로봇 필레이는 현재 일부가 그림자에 가리워져 있으며, 자체적으로 솔라셀을 가동해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은 후 다시 전력이 끊긴 상태다.
하지만 67P혜성이 태양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필레이의 솔라셀은 더많은 태양빛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프톨레미 계측기가 밝혀낸 유기분자와 생명의 지구외 기원설
이언 라이트 영국 개방대교수팀은 구두통 크기의 가스냄새 감지센서인 프톨레미를 통해 혜성 성분을 분석했다.
그 결과 폴리옥시메틸렌(polyoxymethylene (POM)이라는 유기분자 유기중합체가 67P 혜성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POM은 생명체의 기원을 탐구하는 전(前)생물화학(prebiotic chemistry)과 생명의 기원을 밝혀내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성분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필레이는 아직까지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생명체 구성요소인 아미노산의 증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혜성이 원시적 생명체 구성성분을 지구와 다른 태양계의 행성으로 날라왔다고 믿고 있다.
스웨덴의 스반테 아레니우스(1859~1927)는 판스페르미아(Panspermia)이론으로 불리우는 생명체의 지구외 기원설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그는 생명체가 애초부터 지구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날아온 박테리아 포자가 생명의 씨앗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구밖에서 생명의 기원을 찾는 각종 이론은 포괄적으로 포자범재설로 불린다.
이후 미국의 화학자 스탠리 밀러(1930~1977)는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합성하는 실험을 통해 원시지구에서 생명탄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원시대기의 주성분인 암모니아,메탄,수증기와 원시대양인 약간의 물을 플라스크안에 넣고 전기 방전을 일으켜 갈색 유기체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아미노산을 비롯한 유기물질들이 들어있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유기물들이 생명체의 존재 없이도 합성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한편 67P혜성의 중심에서 나오고 있는 전자기장 신호는 이 혜성이 단일 구조체로서 매우 기공이 많다는 것도 보여준다.
■로제타탐사위성과 착륙로봇 필레이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67P)혜성 탐사 로봇 필레이를 실은 로제타탐사선은 지난 2004년 발사됐다.
지구와 화성의 중력을 이용해 10년 이상의 기간동안 64억km를 비행한 끝에 지난 해 8월 67P혜성 궤도에 도달했다.
로제타는 이어 지난해 11월 12일 67P혜성 탐사로봇 필레이를 착륙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필레이가 지표면에 닿을 때 지표면에 탐사로봇을 지지해 줄 작살을 발사하는데 실패했다. 필레이는 2번이나 튕겨져 나갔다.
이 결과 필레이는 예정 착륙지점보다 1km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게 됐다. 그런 후 또다시 튕겨져 나가 더 낮은 곳에 자리잡게 됐다. 필레이는 이 어두운 곳에 자리잡게 되면서 솔라셀을 통한 전원공급을 받을 수 없게 됐고 작동도 중단됐다.
필레이는 착륙 64시간 만에 작동을 멈출 때까지 과학자들이 기대했던 목표의 90% 가량을 달성했다.
ESA는 로제타와 필레이에서 전송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혜성에 있는 물은 지구의 물과 달랐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지구상의 물이 혜성이 아닌 소행성으로부터 왔다는 것이 증명됐다.
로제타는 67P혜성의 주변을 돌면서 계속해서 필레이와 교신하며 혜성에 대한 정보를 지구로 전송해 오고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이재구국제과학전문기자 jk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