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노동부 홈페이지에 나오는 임금 피크제는 정년연장 또는 정년 후 재고용하면서 일정 나이, 근속 기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감액하는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임금 피크제는 세 종류가 있는데 정년 연장형, 재고용형, 근로 시간 단축형이 있다. 임금 피크제를 하면 근로자는 계속 고용이 보장되고 사용자는 인건비 절감 및 신규인력 채용이 가능해지고, 정부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경제 활동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사회보장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임금 피크제는 누가 처음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임금을 피크로 받는 제도가 아니다. 지금 임금을 기준으로 연도 별로 일정 비율을 깎아 내는 제도기 때문에 앞으로 떨어질 일만 남은 것이다. 정확한 이름은 ‘임금 삭감 후 정년 보장제’다. 마치 생명보험이 사망해야 받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사망보험이어야 하는데 듣기 좋게 생명보험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임금 피크제가 나온 배경에는 임금과 복리후생 비용이 높은 오래 근무한 직원들이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일은 안하고 월급값을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일 모레가 정년퇴직인데 굳이 날밤 새우면서 일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내부적으로도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실적이나 고과로 피곤하게 하기도 어렵다 보니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면서 급여 좀 깎을 테니 안 보이는 데에 가서 조용히 있다가 정년퇴직하시라는 취지다. 한마디로 제대 말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임금 피크제에도 문제가 있다. 임금 피크제에 들어가는 순간 급여가 깎이고 정년이 보장이 되는데 누가 또 열심히 일하겠는가? 회사 입장에서도 급여를 깎아 놓고 그렇지만 젊었을 때처럼 더 열심히 해달라고 얘기할 염치가 있겠는가? 회사 내에서 거의 투명인간처럼 열외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임금 피크제로 임금을 깎아도 생산성이 다시 낮아 져서 그 임금 수준을 맞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임금이 생산성을 초과했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기업은 고용을 보장해 주는, 해 줘야 하는 조직이나 단체가 아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인 경우는 고용이 보장 되겠지만 이마저도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면 고용을 보장해 주기 힘들다. 하물며 기업에서 어떤 경우에도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기업 자체가 망해 버리는데 고용이 보장 될 방법이 있겠는가? 기업이 망하게 된 게 누구 책임인지는 따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내 일자리를 책임져줘야 한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 일 뿐이다.
기업에서 임금 피크제를 하는 것은 한마디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대부분 임금은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지만 복리 후생은 손대기 어려운 때도 많다. 임금 피크제에 들어갈 나이쯤 되면 애들 키우면서 한창 돈 들어갈 때다. 학자금 보조, 부모님 의료비와 같은 굵직한 복리후생 혜택을 포기하기 어렵다. 퇴직금을 일시에 받는 명예퇴직조차 일부 복리 후생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현실이다. 회사를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니고 정년퇴직까지 같이 근무하게 될 임금피크 대상자의 간절한 소망을 노조가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이 임금 피크제로 줄일 수 있는 인건비는 사실 그리 크지 않다. 임금을 처음부터 50%씩 팍팍 깎는 것도 아니고 순차적으로 임금을 줄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인건비 규모에서 보면 직접적인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더군다나 이 인건비 줄여서 신입사원을 뽑아야 한다면 회사는 굳이 임금 피크제를 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일하는 신입사원 10명을 뽑아도 단기간에 30년 이상 근무한 선배 한 명의 생산성을 따라 잡을 수는 없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굳이 임금 피크제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정년은 늘어나고 청년층은 일자리가 없으니 정년 늘어나는 부분에서 임금을 좀 줄여서 그 임금을 가지고 청년층을 좀 고용해 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정부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면 인센티브도 주고 정책적 지도를 나서는 모양이다.
임금 피크제를 하는 것이 개인에게, 기업에, 정부에 정말 도움이 될까? 우선 노인 연명 치료하듯이 늘어지게 회사를 다니는 것이 꼭 좋은 것인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위험은 있지만 차라리 목돈 받아서 새 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오래 먹고살 방법일 수 있다. 정부도 인센티브 주고 임금 피크제를 한다고 해서 청장년층 고용문제를 두 마리 토끼 잡듯이 될 것인지 연구해 봐야 한다. 기업들이 지금 등 떠밀려 고용을 하게 되면 3, 4년 뒤에 이들이 또 다른 명예퇴직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의 일자리 감소는 구조적 문제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업이 투자를 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다. 투자를 국내 자동화 설비 쪽으로 하고 고용은 해외 공장에서 하기 때문이다. 작은 벤처나 스타트 업들은 임금 피크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장년층에게 임금 피크제를 한다고 해서 청년 고용이 늘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론적으로 노동 개혁을 임금 피크제보다는 저성과자 해고에 집중해야 하고, 정부는 저성과자들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편이 장기적으로 훨씬 낫다. 자칫 노동개혁 한다고 온 천지 시끄럽게 하다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저성과자 해고는 말도 못 꺼내고 오히려 별 도움 안 되는 임금 피크제만 합의하는 용두사미가 될까봐 걱정된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