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문명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은 변화무쌍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그 변화무쌍의 가장 큰 원인은 지정학적 요인이다. 우리나라도 흔히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거나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얘기하지만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에 비할바가 아니다. 중앙아시아는 동으로는 중국 문명권, 북으로는 흉노, 돌궐, 몽고족 등의 북방문명권, 동남으로는 인도문명권, 서남으로는 페르시아 문명권이 맞물리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으로 각기 다른 문명들이 끊임없이 교차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으며 이 시대에도 그와 같은 운명을 피할 수가 없는 형편에 놓여있다.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 실크로드 전 구간의 중간지대에 해당되며 중국으로 향하는 대상들에게는 길고 험한 산맥과 사막을 지나기 전에 숨을 고르는 지역이며 중국에서 나와 서쪽으로 가는 대상들에게는 긴 사막과 험준한 산맥을 넘고 난 후에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지역이었다. 또한 그곳은 동쪽으로 가는 대상들에게는 구매리스트를 최종적으로 확정짓는 곳이었고 서쪽으로 가는 대상들에게는 구매품을 어느 곳에서 얼마에 풀것인가를 가늠케하는 곳이었다. 다시 말해 중앙아시아는 실크로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중앙아시아는 상업의 중심적 역할만을 한 것이 아니라 온갖 종교가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였다. 배화교(Zoroastrianism), 마니교(Manichaeism)와 불교가 꽃을 피웠었고 기독교(Nestorian Christianity/Nestorianism)가 성행한 적도 있으며 7세기 이후에는 드디어 이슬람교가 들어와 지금껏 회교 문명권에 속하게 된다.
종교 뿐만이 아니고 민족적 배경(ethnicity)을 살펴보아도 간단하게 정의하기엔 너무 복잡하다. 최초에 그 지역에 누가 살았는지는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으나 어떤 원주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에 그들은 현재의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 지방에 자리잡고 있던 서스키타이족(Royal Scythians)과 그 동쪽 스텝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동스키타이족(Saka) 등이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거나 때론 그들의 용병이 되는 방법 등으로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하여 혼합된 인종을 구성하게되었다.
거기에 더해 돌궐족(Turk), 인도계통, 이란계통 등 여러 계통의 민족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대단히 복합적인 민족적 배경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실크로드와 관련하여 중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요즘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복합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꽃을 피우는 문화적 용광로(melting pot)라고 해야할 것이다.
페르시아 문명
현재의 이란을 중심으로 한 페르시아는 그 서쪽에 있는 아랍 및 지중해 문명권과는 별개의 문명을 형성해 왔다. 이란에서 발생한 왕조들이 터어키와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영토로 가진 적이 수차례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페르시아 문명권은 서쪽으로는 현재의 이라크 지역인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을 경계로 하고 그 동쪽으로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지역에서 인도 문명권과 경계를 이루었다고 보아야한다. 기원전 7-4세기에 메디안(Medes) 왕조와 아케메네스(Achaemenid)왕조를 시작으로 서기 3-7세기의 사산(Sasanid) 왕조를 거쳐 중세기 이후 여러 왕조들이 페르시아 지역에서 패권을 장악하고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서기 7세기에 이슬람교가 이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하였지만 실크로드의 관점에서 보면 이슬람교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대상을 이용하여 이슬람교를 전파하기도 하고 이슬람 상업주의를 발달시켜 경제활동을 더욱 왕성하게 하였다. 그 중심에 페르시안들이 있으며 그들은 실크로드 교역에서 투자자로서 혹은 상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 또한 무슬림으로서 쿠란의 교리를 원용한 상도를 세워 신뢰를 중요시하는 상거래, 정의와 정직성 그리고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상거래 등의 원칙을 상거래에 적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무슬림으로서 해서는 않되는 상거래 원칙도 세워 예컨대, 술이나 마약, 불명료한 계약행위, 공공의 이익에 반하여 이득을 취하는 행위, 사술을 사용한 상거래, 합법적인 상품이라도 이것이 불법한 행위에 사용될 수있는 물건의 거래,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 등을 금지하였다. 따라서 실크로드와 관련한 페르시아의 정체성은 이슬람교의 전파와 상거래의 활성화라고 볼 수 있다. 실크로드 교역의 요충지에서 실크로드 상술을 수천년간 연마한 그들의 협상술을 대단히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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