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클로즈업]위기를 경영하라

[북스 클로즈업]위기를 경영하라

임직원 15만명. 임직원 평균 연령 29세. 연구개발(R&D) 인력만 7만명. 국제특허 보유 1위 기업. 톰슨로이터 선정 세계 100대 ‘혁신기업.’ 인터브랜드 선정 100대 글로벌 브랜드. 세상에 이런 기업이 있느냐 물을 수 있겠지만 있다. 중국 IT기업, 화웨이 얘기다.

중국 화웨이는 세계 유수 이동통신 업체에 네트워크 장비 등 하드웨어를 판매한다. 이 회사 장비를 이용,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전 세계 인구 6명 중 1명꼴이다. 단순 네트워크 및 서버 장비 제조사를 넘어 이 회사는 최근 세계 3대 스마트폰 제조사까지 이름을 올렸다. 기업 간(B2B) 업체에서 소비자 상대(B2C)로 사업을 확장해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창업 27년 만에 화웨이는 연매출 5조원 규모로 커졌다. 하지만 처음 시작부터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1987년, 화웨이는 동업자 6명이 자본금 360만원으로 시작한 작은 업체였다.

설립 이후 중국 통신장비 시장에 진출해 있던 기존 강자인 지멘스, 에릭슨, 루슨트테크놀로지 등 쟁쟁한 글로벌 업체와 경쟁해야 했다. 기존 국영 업체와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민영 기업인 화웨이는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없었다.

화웨이는 번번이 파산 직전에 몰렸다. 자금도, 기술도 없었기에 고비를 겪을 때마다 모든 자원과 인력을 동원한 일명 ‘늑대정신’으로 정면승부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다른 기업들이 구축하지 못한 선진 시스템과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냈다.

포천지가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리더’ 1위로 꼽은 창업자 런정페이는 설립 초 직원에게 많은 월급을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인재를 모으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선 ‘당근’이 필요했다. 그는 스스로 1% 남짓한 주식만 가진 채 나머지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전면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한 것이다.

기술력을 보강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흔히 기업은 설립 초기나 위기를 맞았을 때 기술보다 영업에 투자를 집중해 기업이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낮추곤 한다. 화웨이는 반대였다. 항상 인력의 절반은 연구개발(R&D) 분야에 투입했다 자금도 아끼지 않았다. 직원들은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헌신했다. 현재까지도 매출 10% 이상을 매년 R&D에 쏟아붓는다.

IT버블이 붕괴했을 때 화웨이는 기업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지치지 않았다. 꼼수 없이 정면으로 맞선다는 전략이었다. 5년간 회사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바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다. 이로써 선두업체를 좇던 ‘추종자’에서 업계를 선도하는 ‘강자’로 올라섰다.

이뿐만 아니다. 화웨이는 지금도 ‘포천 500대 기업’ 중 드물게 비상장을 고집하고 있다. 주주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다.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게 아니라 부회장 세 명이 6개월씩 돌아가며 회사를 경영하는 최초의 ‘순환 최고경영자(CEO) 제도’도 몇 년째 시행 중이다.

저자는 화웨이에 직접 근무, 재무와 마케팅, 경영관리 등을 두루 거쳤다. 최근 중국 기업들 추격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 기업이 이 책에서 중국 IT분야 대표주자이자 조용히 글로벌 강자로 올라선 화웨이 비결을 배웠으면 한다.

양사오룽 지음. 송은진 옮김. 북스톤 펴냄. 1만6000원.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