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불안해결사 빈현우 칼럼] “열정의 비밀” 기적 만들기

나는 프로강사다 (12) 스피치는 인간의 욕구다

“스피치는 인간의 욕구다”

“요즘 젊은이들은 끈기가 없어.” 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런데 요즘만 그런가? 아마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이 젊은이였을 때도 기성세대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TV를 ‘바보상자’라고 하면서 크게 우려했던 적도 있었다.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럴 것인데, 기성세대들은 그저 처음 보는 현상들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 중에 끈기 있게 무언가를 성취해 나가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세상이 발전함과 더불어 사람들의 전체적인 역량도 발전되어 가는 것 같다.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의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훌륭한 자질들을 많이 갖고 있다.

더 자신감 있고 더 패기 있다. 두려움에 머뭇거리는 것보다 행동하여 성취한다. 용감하게 국토대장정을 하고 거침 없이 세계일주를 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찌 보면 무모하리만치 도전을 즐기고 그 가운데서 성장한다. 이렇듯 세상은 멋지게 성장해 나가고 있다.

내가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요즘의 젊은이들은 예전과 다르게 뛰어난 스피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젊은이였던 시절에는 그렇게 당차게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의 젊은이들은 정말 당차다. 멋있다.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특히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대단한 능력으로 여겨오지 않았던 한국에서는 꽤나 고무적인 일이다.

여기 잠깐, 모 기관에 기고한 나의 글을 소개한다. 글의 제목은 ‘스피치는 인간의 욕구다’이고, 부제는 ‘말 하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면 잠재능력의 출구가 열린다’이다.

“우리는 흔히 스피치를 잘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피치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은 ‘스피치를 잘 하고 싶다’로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 스피치는 인간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장 근본적인 욕구 중의 하나다.

‘삼국유사 제2권 제48대 경문왕’ 부분에 보면, 우리가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이 나온다. 업무상 임금님 귀를 보게 된 복두장이(왕관제작자 혹은 이발사)는 절대 말하지 말라는 엄명에도 불구하고, 끝내 참지 못하고 대나무 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본능에 가까운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러한 본능에 가까운 욕구를 맘껏 발산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도 특히 공공장소에서. 그 원인은 성장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한 번쯤은 이런 말을 듣고 자란다. “저 놈은 죽어도 입만 동동 뜰 놈이야” “입만 살아 가지고” “말만 앞세우는 놈이군” “말보다 행동”

그러니 우리는 늘 조심스럽다. 특히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혹시라도 한 마디 했다가 이런 말들을 들을까 두렵다. ‘일단 말을 하면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예 우리의 입을 닫게 만든다.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생각이 결국 우리를 침묵하게 한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오면서 ‘말 하고 싶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거세당하게 된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더욱 그렇다. 자칫 ‘가벼운 놈’이 되기 십상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오바마 기자회견’ 동영상에는, 질문권한을 먼저 부여 받은 한국 기자들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 장면이 연출된다. 급기야 한 중국 기자가 한국 기자를 대신해서 질문하게 되는 장면까지 연출된다. 안타까운 장면이다. 이것은 한국 기자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것은 우리의 문화에 기인한다.

이렇게 성장한 우리는 이 ‘말 하는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져도 늘 움츠리며 살아간다. 그리고는 때가 되면 죽는다. 얌전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도 그랬다. 마흔까지 그렇게 살았다. 문득 스스로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니 안타깝다 못해 억울했다. 마흔이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 하는 능력’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말 하는 능력’을 개발하게 되면 ‘잠재능력’이 개발된다는 것을. ‘말 하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자 억눌려 있던 잠재능력이 깨어난 것이다. 용기, 도전, 실천, 행동, 열정…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모든 능력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 글을 빌어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말 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곧 진정한 자기계발이라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 하는 능력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를 나는 ‘발표불안’이라고 정의한다. 1:1 미팅이나 사적인 자리에서는 너무나 사교적이고 말도 잘 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들 앞에만 세워 놓으면 불안을 느낀다. 이러한 발표불안 또한 성장과정에서 ‘말 하고 싶은 욕구’를 거세당하고 억눌린 결과다.

발표불안과의 정면승부를 통해, 발표불안을 통제하는 것은 ‘말 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비로소 ‘잠재능력의 출구’가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나는 ‘스피치마스터과정’을 진행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존감을 확보한 경쟁력 있는 개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체험을 함께 나눈 구성원은 강력한 팀웍을 가진 ‘새로운 팀’으로 거듭난다.”

“두려움을 설렘으로”

그렇다. 스피치는 인간의 욕구다. 또한 인간이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한, 스피치 능력이 인간의 가장 큰 능력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제대로 개발하지도 못하고 개발할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한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치부해 버리고 살아간다. 그리고 때가 되면 죽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첫 책에서 밝혔듯이, 나는 첫 직장의 연수시절에 앞에 나가서 한 마디 말도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를 바라보는 동기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 그럴 듯한 대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런 것들로 인해 그 날 이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회사생활 내도록 발표의 두려움으로 힘겨워했다.

그렇게 40년이라는 인생을 견뎌 왔다. 어쩌면 당신이 지금 견뎌오는 것처럼.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스피치와의 정면승부’라는 기치 아래 도망가는 것을 그만두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정면승부를 벌여 나갔다. 물론 쉽지 않았다. 인간의 3대 두려움 중의 하나라는 ‘대중연설의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이건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몇 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지속적으로 해 나가면 임계점을 만난다. ‘그 분’을 만난다. 어느 날인가 나는 ‘그 분’을 만났고 그 날 이후부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두려움이 온전히 설렘으로 다가왔다. 떨림은 더 이상 도망갈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떨림이야말로 인생에서 만끽해야 할 설렘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요즘의 젊은이들은 많이 괜찮아진 편이긴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어려움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내 경험상, 이것은 극복이 가능하다. 어차피 극복할 대상이라면 젊을 때 극복해 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멋지게 제품을 개발하고 멋지게 발표자료를 만들고서도, 정작 발표장에서 떨려서 제대로 말을 못해 경쟁에서 떨어지는 아픔의 당사자가 되지는 말아야겠다.

상상해 보자. ‘발표의 두려움’을 극복해 낸 당신의 모습을. 그 어떤 청중 앞에서든 온전히 존재해 있는 당신의 모습을. 그리고 또 상상해 보자. 그런 당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표의 두려움으로 인해 당신이 포기하고 있었던 당신의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기적 만들기”

한 증권회사에 다니는 분이 내가 진행하는 ‘DID스피치마스터과정’에 오신다. 8주 과정 중 6주차를 마친 그 분이 진지하게 말한다. “선생님, 저의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렇다. 그는 지금까지 ‘발표의 두려움을 가진 그’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발표의 두려움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잠재능력을 스스로 발견한 것이다.

조만간 그도 ‘그 분’을 만날 것이다. 조만간 그도 ‘유레카’ ‘심봤다’를 외칠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때가 되면 정년퇴직을 맞이했을 그는 이제 ‘새로운 그’를 만날 것이다. 그는 꾸준히 연습을 해 나갈 것이며, 언젠가는 임계점을 넘을 것이다.

발표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에도 인내와 끈기는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해 나가는 것. 그리고 성급하게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는 것. 그것이 ‘그 분’을 영접하는 길이다. 이제 그의 마음 속으로 ‘미래가 먼저 온다.’

어쩌면 그가 미래가 먼저 온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어느 순간 느낌이 온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느낌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발표의 두려움’을 ‘발표의 설렘’으로 온전히 받아 들이려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의 그날의 느낌을 넘어서서 결국 ‘그 분’이 오실 것이다.

그 분이 오시는 날은 기적이 일어나는 날이다. 어제까지 사람들 앞에서 한 마디 말도 못 하던 사람이 오늘 멋진 스피치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밤 사이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10년 전에 사람들 앞에서 한 마디 말도 못 하던 사람이 오늘 멋진 스피치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가? 기적인가?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은 기적이고 10년 만에 일어난 일은 기적이 아니란 말인가?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우리는 누구라도 기적을 만들 수 있다. 누구라도 기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은 10년은 커녕 한 달 동안도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해내지 못한다. 내 경험을 빌어서 말씀 드리자면, 나의 경우에는 ‘미래가 먼저 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한 달 동안 지속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면 분명 ‘그 분’이 오신다. 기적이 일어난다. 그 때부터‘그 분’은 당신이 몇 달 동안 해 오지 못하던 일들을 단 하루 만에 해내게 만들기도 하신다. 그것이 기적인 것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 기적을 경험해 보라.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당신 또한 ‘기적 만들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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