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믿고 맡길 사업자가 없습니다.” A공기업 최고정보책임자(CIO) 말이다. A공기업은 당초 발주하기로 한 시점을 몇 개월 넘겨 사업을 발주했다.
#“개정 소프트웨어(SW)산업진흥법 시행 첫해 매출이 크게 늘었지만 결국에 적자가 발생했습니다. 올해는 매출보다 수익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수주할 계획입니다.” 중견 IT서비스기업 B사 공공영업본부장의 말이다. B사는 이후 간신히 적자는 면했지만 영업이익률 0%대를 기록했다.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는 공공기관, 사업을 수행하는 정보기술(IT)기업 모두에게 공공정보화 시장은 뜨거운 감자다. 중소 소프트웨어(SW) 산업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개정 SW산업진흥법은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재개정 논의에 휩싸였다. 공공정보화 시장 개선 요구가 이어진다.
◇예산 부족에 따른 저가사업 발주가 문제
문제 단초는 턱없이 적은 정보화 예산이다. 국가 전체 정보화 예산이 작년 대비 7.4% 증가했지만 시스템 규모 증가 등을 고려하면 작년과 유사한 수준이다. 올해 국가정보화 예산은 3조8125억원으로 작년 3조5502억원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공공기관 CIO는 “매년 업무시스템 증가로 유지관리비가 늘어난다”며 “정보화 예산은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SW 제값 주기 등으로 유지관리 요율 인상도 이뤄졌다. 신규 사업 발주는 쉽지 않다.
정부 시책으로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정부3.0이나 빅데이터 분석 등 사업을 발주하면 예산은 거의 남지 않는다. 매우 적은 예산으로 업무 증가에 따른 시스템을 구축한다. 여기에 생색내기 프로젝트까지 추가하면 사업 예산은 비현실적 금액이 배정된다.
개정 SW산업진흥법 시행 첫해인 2013년과 지난해 큰 폭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중견 IT서비스기업은 더 이상 비현실적 금액이 책정된 사업에 제안하지 않는다. 올해 발주된 상당수 사업이 제안업체 부족으로 유찰됐다. 유찰비율은 절반에 이른다.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여기는 유지관리 사업도 올해 상반기 43.7%가 유찰됐다. 이 중 50%가 두 차례 모두 유찰된 사업이다.
저가 발주는 저가 수주로 이어진다. 사업 수행업체 수익도 문제지만, 공공정보화 품질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다. 중견 IT서비스기업 관계자는 “수익 확보를 위해 충분한 인력을 투입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며 “정상적 상황에서는 괜찮다 하더라도 위험 요인이 발생하면 대처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공공정보화 시장에서는 이미 여러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평을 받는다.
중복 사업을 줄여 단일 프로젝트당 예산을 늘리는 방법이 해법이다. 생색내기 프로젝트는 범정부 전사아키텍처(EA) 기반으로 철저하게 걸러내 예산 낭비를 줄여야 한다. 지나친 예산절감이 올바른 정책 수행이라는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 결과 중심의 감사제도 개선도 요구된다.
◇잦은 과업 변경과 모호한 사업대가도 문제
잦은 과업 변경이나 이에 따른 대가 지급이 없는 것도 문제다. 상당수 공공정보화 사업은 계약 당시와 사업 수행 시 과업이 크게 변경된다. 잦은 과업 변경은 명확하지 않은 제안요청서(RFP) 작성에 기인한다.
공공기관 담당자는 과거 대기업에 의존해 RFP를 만들다 보니 상세 RFP를 만들지 못한다. 행정자치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상세 RFP 만들기 정책을 수립, 추진하지만 아직도 시험 단계다. 대부분 기관의 RFP 중 과업지시 사항은 몇 페이지 분량밖에 안 된다. RFP 상당 부분은 프로젝트와 상관 없는 기관 소개 등이다.
프로젝트 중 잦은 과업 변경은 추가 인력 투입이 필요하다. 대부분 중견·중소기업은 평상시 추가 투입할 인력을 보유하지 못해 고스란히 비용으로 연결된다. 갑작스러운 추가 인력 투입으로 적정 인력 구하기도 쉽지 않다. 적정 인력을 추가 투입시켜도 발주기관이 비용을 보전하지 않아 적자로 이어진다.
사업 대가의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개선할 사항이다. 정부 사업대가 고시가 폐지되면서 SW산업협회 주관 민간으로 이관됐지만 여전히 명확한 기준이 없다. 중견업체 관계자는 “명확한 사업대가 기준이 없어 고급 인력이 투입돼도 중급 인력 대가로 계산된다”며 “이러한 이유로 업체는 사업 난이도가 높아도 고급인력을 투입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명확한 상세 RFP 작성을 확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프로젝트에 의무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프로젝트 관리 능력을 높이기 위해 프로젝트관리조직(PMO)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형식적 PMO 사업이 아닌 실질적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 PMO 사업 발주는 늘었지만 상관없는 사업을 묶어 발주하거나 지나치게 낮은 금액을 책정해 질적으로는 오히려 악화됐다.
업계가 참여하는 사업대가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미래부가 SW사업정보저장소를 구축, 공공정보화 사업 대가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SW사업정보저장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충분한 데이터베이스(DB)를 쌓아야 한다. 시일이 필요하다. SW산업협회 주관으로 사업대가 기준을 마련하지만 공공정보화 현장 적용을 위해 더 많은 업체가 참여하는 논의 자리도 필요하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