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도입한 후 지난달 말로 꼭 300일이 지났다. 많은 논란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통신서비스 수준 향상, 통신요금 인하 효과 등이 나타났다. 지난 300일 동안 단말기유통법이 이동통신시장에 가져온 근본적 변화를 짚어본다.
이동통신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기변경(기변)’ 가입자가 늘었다는 점이다. 단말기유통법 시행 전만 해도 이통시장은 번호이동(번이)이 38.9%로 우세했다. 기변은 26.2%에 불과했다. 번호이동은 이통사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이통사 간 가입자 뺏기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요금인하와 서비스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근본적 이유로 지적됐다.
하지만 단말기유통법 시행 후 상황은 바뀌었다. 기변 비중이 무려 53.7%까지 늘어난 것이다. 번호이동은 24.3%로 급락했다. 휴대폰을 구입할 때 이통사를 바꾸는 사람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번호이동에 지원금과 보조금이 많이 지급됐다. 소비자와 판매점 모두 번호이동을 하는 게 이득이 컸다. 단말기유통법에서는 이게 힘들어졌다. 번이와 기변 지원금을 차별할 수 없고, 보조금 차등지급도 불법화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번호이동을 하는 게 더 손해다. 한 이통사에 오래 머무를수록 늘어나는 멤버십 등 혜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예상이라도 한 듯 이통 3사는 일찌감치 서비스 경쟁에 몰두했다. 기존 멤버십 혜택을 강화하고 새로운 멤버십을 만드는가 하면, 타사와 차별화된 신규 서비스를 대거 출시했다. 3사가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내놓은 굵직한 서비스 정책만 해도 30건이 넘는다. 3사가 매달 한 건 이상 서비스를 내놓은 셈이다.
서비스 경쟁이 강화되면서 나타난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가 ‘단독 전용폰’ 출시 증가다. 경쟁사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전용 휴대폰을 출시해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는 한편 기존 가입자를 묶어두려는 전략이다. 올해 들어 SK텔레콤이 전용폰 네 모델을 출시했고, LG유플러스가 두 모델, KT가 한 모델을 내놨다. 3사 모두 후반기에 전용폰을 추가 출시할 계획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보조금 등 강력한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전용폰 의미가 상대적으로 작았다”며 “단말기유통법 이후 전용폰으로 가입자를 유치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비스 경쟁 심화는 통신요금 인하에도 영향을 미쳤다.
37%까지 치솟았던 6만원 이상 요금제 가입자 비중은 7월 말 9.5%까지 떨어졌다. 대신 4만~5만원대 요금제 가입자가 17.1%에서 32.2%로 배 가까이 늘었다. 3만원 이하(부가세 제외) 요금제 가입자도 소폭 증가했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단말기유통법이 고가요금제 가입을 미끼로 내세우지 못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고가요금제에 가입하면 보조금을 많이 준다”와 같은 영업행위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변시대’가 되면서 가입자를 묶어둘 필요성이 커진 이통사가 요금인하 경쟁을 펼친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게 ‘데이터중심요금제’ 도입이다. 5월 KT를 시작으로 이통 3사가 잇따라 도입한 데이터중심요금제는 음성과 문자를 사실상 공짜로 제공하고 데이터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내도록 한 것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8월 2일 현재 데이터중심요금제에 가입한 633만명 가운데 이전보다 요금이 줄어든 사람은 52%나 됐다. 증가한 사람은 28%에 그쳤다.
음성통화는 73분, 데이터는 0.5기가바이트 더 많이 사용하고도 요금은 월평균 2770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비 인하 효과가 결코 작지 않다.
이 밖에도 이통 3사는 가입비 폐지, 요금약정 위약금 폐지, 순액요금제 출시 등 직간접적으로 통신비 인하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쏟아냈다.
장기가입자나 자급제폰 소유자에게 요금할인 20% 혜택을 주는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 가입자도 7월 말 현재 136만명이 가입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요금할인율을 12%에서 20%로 높인 4월 이후 가입자가 껑충 뛰었다.
이처럼 이통 3사가 서비스와 요금인하 경쟁을 펼치면서 3%에 육박하던 해지율은 3사 모두 1%대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올해 2분기 SK텔레콤(2.3→1.3%), KT(2.9→1.8%), LG유플러스(2.84→1.73%) 모두 해지율이 크게 감소했다.
이통사 관계자는 “해지율은 전체 가입자 가운데 서비스를 해지한 가입자 비율로, 기존 가입자를 얼마나 잘 지켰는지 보여주는 고객 충성도 지표”라며 “해지율이 떨어진 것은 그만큼 고객을 타사에 뺏기지 않고 잘 지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통법 300일은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많은 논란도 낳았다. 대표적인 게 ‘시장침체’다. 이통사 간 치열한 가입자 뺏기가 사라지면서 시장이 위축됐다는 것이다. 그 여파로 국내 휴대폰 제조사와 중소 유통점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LG전자가 지원금 상한을 폐지해 달라고 미래창조과학부에 요청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유통점은 10%가량 줄었다.
하지만 모든 게 단통법 때문인지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아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휴대폰 시장 자체는 2011년 2598만대를 정점으로 매년 10%가량 줄어들고 있다. 시장포화가 원인이다. 유독 10% 이상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게 아니라면 단통법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올해 월평균 신규 휴대폰 개통건수는 지난해 1~9월의 98~99%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