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젯(Ink-jet) 프린팅 기술이 디스플레이 혁신을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생산에 잉크젯 프린팅 기법을 활용한 ‘용액공정(Solution Process)’ 기술 적용을 시도하면서 공정 혁신 기대감이 높아졌다. 양산 기술 확보에 성공하면 현 증착공정 대비 원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고 공정 시간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현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수준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대형 OLED를 양산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물론이고 삼성디스플레이까지 잉크젯 프린팅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장비·소재 업체와도 적극적으로 물밑 접촉을 벌이고 있다. 업계는 2017년께 양산 라인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공정 장비와 소재 수준, 투자 여력 등을 고려했을 때 2017년부터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설비 투자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며 “초기 단계에서는 기존 증착 공정을 일부 포함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잉크젯 프린팅, 왜 주목하는가
디스플레이 업계에 잉크젯 기술이 처음 도입된 것은 컬러필터 제조 공정에서다. 컬러필터 제조에는 용액을 기판 위에 떨어뜨려 고속 회전시켜 얇게 퍼지게 하는 ‘스핀 코팅(Spin coating)’ 방식을 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 안료를 도포하면 재료 손실이 너무 많다. 소재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프린팅 기법을 처음 적용했다. 지금도 컬러필터 공정에는 스핀 코팅이 많이 사용되지만 최근 OLED 인캡슐레이션(봉지) 공정과 터치스크린 제조 공정 등으로 적용 분야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LCD 분야도 잉크젯 장비 사용이 늘고 있다. 액정 도포와 화소를 구분하기 위한 뱅크(bank) 구조 형성에 주로 사용된다.
업계가 어떤 영역보다도 크게 기대하는 부분은 대형 OLED 제조에서 용액 공정이다. 용액 공정이란 말 그대로 액체 상태 OLED 발광 소재를 잉크젯 프린팅 기법으로 기판 위에 뿌려 일정한 막을 형성하는 것이다. 액체 상태 발광 재료를 각각 노즐을 통해 미세하게 분사하기 때문에 버려지는 소재가 거의 없다. 이론적으로는 재료 사용 효율 100%다.
액상 형태로 공정도 간단하다. 8세대 크기 원장 유리 기판을 자르지 않고 공정이 가능하다. 공정이 간소화되면 장비 투자비 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공정 시간도 대폭 절약할 수 있다.
현재 디스플레이 업계는 분말 형태인 OLED 재료를 진공상태에서 증착공정을 거쳐 기판에 얹고 있다. 이 방법은 공정이 복잡하고 재료 이용 효율이 높지 않다. RGB 증착방식으로는 재료 사용 효율이 10%, 화이트(W)OLED 방식으로는 40%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재 효율 향상 기술 과제로 남아
용액 공정 아킬레스건은 발광 재료로 사용되는 솔루블 소재다. 기존 증착공정에 들어가는 소재와 비교했을 때 발광 효율과 수명이 떨어진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존 재료 대비 효율이 70%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이다.
최근 2년간 머크, 듀폰, 스미토모화학 등 글로벌 화학소재 업체가 적극적으로 소재 개발에 나서 현재 적색(R)과 녹색(G)은 성능이 많이 향상됐다. 증착 재료 수준까지 개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블루(B) 소재는 낮은 수명과 효율이 여전히 문제다.
유비산업리서치에서 미국 UDC의 증착 재료와 솔루블 소재를 비교 분석한 결과 적색·녹색은 기존 증착 재료와 근접한 수준까지 성능과 수명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2017년께면 증착재료와 비슷한 수명과 효율의 솔루블 재료가 모두 개발될 것으로 전망했다.
장비는 상대적으로 기술 진척이 많이 이뤄졌다. 미국 카티바는 삼성디스플레이와 함께 RGB OLED 양산을 위한 장비 개발에 착수했으며, 내년 초 시범 적용이 목표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도쿄일렉트론(TEL) 잉크젯 프린팅 장비를 도입해 연구개발하고 있다.
이외에 국내 세메스가 독자적으로 잉크젯 프린팅 시스템을 개발, LCD 액정 공정 등에 적용했다.
◇하이브리드 방식 우선 적용…2016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 141%
잉크젯 프린팅 기술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활발하게 적용될 수 있었던 것은 부품인 ‘프린팅 헤드’ 기술 진화가 한몫했다. 프린팅 헤드가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오차가 해상도를 결정짓는다. 오차 범위를 얼마나 줄이는지에 따라 구현할 수 있는 해상도가 달라진다. 기존에는 헤드가 이동 후에 원점으로 돌아오는 오차가 10㎛(마이크로미터) 수준이라 200ppi 해상도 수준만 가능했으나 최근에는 오차 범위가 줄어들어 400ppi까지 구현 가능하다.
디스플레이 제조에 많이 사용돼온 피에조(piezo) 기술이 헤드에 적용되면서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 피에조는 압전소자를 사용해 일정량 액체를 토출하는 기술로 소량의 액체를 미세하게 도포하기에 적합하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증착과 잉크젯 프린팅 기술을 동시에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생산 방식을 우선 도입할 전망이다. 적색과 녹색은 잉크젯 프린팅 기술로 구현하고, 청색 재료는 기존처럼 증착해서 구현하는 것을 활발하게 검토하고 있다.
유비산업리서치는 용액 공정 AM OLED 적용 패널이 오는 2020년까지 1400만개로, 약 50억달러 시장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했고,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패널 매출액 기준으로 연평균 141%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애플리케이션으로는 태블릿 PC와 TV용 패널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용액 공정에 적용될 발광재료 시장은 2020년까지 약 2억6000만달러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이충훈 유비산업리서치 수석애널리스트(대표)는 “현 WRGB OLED는 컬러필터를 사용하고 있어 LCD 패널 제조 단가에 근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용액 공정 OLED는 OLED 패널 제조 단가를 LCD 패널 가격으로 낮출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2017년 양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