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험인증 분야는 산업 다양화에 따라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제도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제도가 도입된다. 이에 대응하는 통합관리시스템, 거버넌스 확립이 절실하다.
지난해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국제인정협력기구(IAF·ILAC) 합동총회에서 이슬람국가로 수출되는 할랄식품 인증 업무 협의가 있었다. 이슬람국가 대표는 자신들 국가가 직접 할랄식품 인증을 추진하기로 하고, 올해 국제할랄포럼(IHF)을 출범시켜 내년 인증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국제인정협력기구 같은 국제인정기구가 또 하나 생기는 것이다.
국제인정협력기구는 할랄식품 인증 논의만 하다 의사결정을 머뭇거린 탓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할랄식품을 수출하는 나라 인정기구 대표는 인증기준과 일정 등 세부 내용을 파악하느라 동분서주해야 했다.
할랄식품 인증은 그동안 이슬람국가표준과 계량기관(SMIIC) 인증기준에 따라 다뤄졌다. 앞으로는 IHF가 관리한다. 세계 할랄제품 시장은 2012년 3조5000억달러에서 2020년 6조4000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식품뿐 아니라 화장품·의약품·의복·카펫·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유사한 사례로 선진국 대형 유통업체로 구성된 국제식품안전협회(GFSI) 농식품안전인증이 있다. GFSI 농식품안전인증은 식품안전인증, 농산물 규격, 육가공 규격, 수산물 규격 등을 통합 관리하는 제도다. 유럽 지역 위주로 운영된다. 식품안전인증(FSSC 22000)이 대표적이다.
FSSC 22000은 식품제조공장 안전기준을 통합해 전반적인 기업 안전관리뿐 아니라 제품 안전성도 보장한다. 네슬레·코카콜라·다농 등 146개국 9000여개 식품기업이 인증을 취득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인정지원센터(KAB)가 지난해 인정기관으로 등록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TL 9000이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 품질경영시스템에 정보통신 분야 요구사항을 결합해 독자적으로 운용되는 인증제도다. 북미와 아시아가 주된 적용 지역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국제자동차특별위원회와 ISO 기술위원회가 공동 개발한 ISO/TS 16949가 있다. 다양한 자동차 표준 요소와 ISO 품질경영시스템을 결합했다. 세계 주요 자동차제조사를 비롯해 자동차 관련 기업 약 30%가 채택했다.
국제인정협력기구가 세계 어디에서도 통용되는 인증을 위해 출범한 지 올해로 22년이 됐다.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 오히려 유사한 민간 인정기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인증 업무가 세분화되고 대륙별 요구 수준이 다양해진 이유도 있지만 국제인정협력기구 의사결정이 신속하지 못한 탓이 크다.
나라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다르다. 민간기구, 공공기관 또는 국가가 주도해 대응한다.
분명한 점은 형태는 다르지만 주요 선진국 모두 인정시스템을 통합 관리하는 기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독일·중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민간단체 또는 비영리법인, 개발도상국은 정부가 직접 통합 관리한다.
우리나라는 인증 종류도 많고 관리기관도 다양하다. 산업 발전과 원활한 수출입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체계적인 통합 거버넌스가 절실하다. 최근 확산되는 자유무역협정(FTA), 경제동반자협정 등도 최종 마무리에 해당하는 효율적 인증 관리 시스템 없이는 한계가 있다.
국내 시험인증 통합 거버넌스는 국제인정협력기구를 타산지석 삼아 어떤 주체가 주도하든 신속한 의사결정은 물론이고 시장 기능에 따라 선택되고 활성화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간 인증 분야를 해외에 내주게 된다. 비용 증가와 기술 유출뿐 아니라 우리가 가져야 할 일자리도 잃을 수 있다.
조기성 한국인정지원센터 대표 kisung20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