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앞둔 대한민국 마음이 기쁘지만은 않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는 커녕 마음 속 깊이 ‘군국주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곳곳에서 명백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추억을 현실에 되살려놓으려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자위대를 일반 군대로 만들기 위해 ‘헌법9조’를 개정하려 한다.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뒤 2017년 정기국회에서 개헌에 나설 것이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 관측이다. 일본은 왜 이런 일을 벌이려는 것일까. 일본은 왜 끊임없이 주변국과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것일까. 미국은 왜 일본의 이런 행위를 방임하는 것일까.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북한의 속마음을 알아야 한다. 이들이 어떤 역사를 살아왔고 마음 속 깊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표면적으로 드러난 행동의 동인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민간 싱크탱크인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 책임연구원인 저자는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를 2017년 가상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가상다큐 동아시아 2017’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2017년에 벌어질 법한 동북아시아의 긴박한 ‘외교암투’를 실감나게 그렸다.
배경은 일본이 기어코 ‘다케시마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한 뒤 헌법9조 개정을 위한 투표를 강행하기까지의 두 달이다. 아베는 개헌에 부정적인 일본 국민 마음을 돌려세우기 위해 ‘센카쿠열도’를 전격 방문해 중국을 자극한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은 일본 행위를 묵인하고, 중국은 항공모함을 파견하는 한편 북한에 핵미사일을 실전배치하도록 설득해 일본 국민의 ‘전쟁공포’를 건드린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 미국, 북한의 외교적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청와대 지하벙커와 베이징 대사관에서 대책회의를 하지만 회의는 회의로 끝날 뿐 무기력한 모습만 연출한다. 이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우리 외교의 적나라한 모습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
저자는 이 과정을 소설 기법으로 드라마틱하게 전개했다. 사실적이고 속도감 있는 서술로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실제와 가상 인물을 적절히 혼합해 마치 실제 일어난 일을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지간한 전공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각국 정치기구와 담당자 이름이 세밀하게 등장하는 데다, 대화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있어 저자의 깊은 ‘내공’을 짐작케 한다. 사실 저자는 중국 외교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고 존스홉킨스-난징 중미연구센터에서 중미관계를 연구한 국제통이다.
책 중간 중간에 각국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가상의 ‘목소리’ 페이지를 배치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천천히 읽어도 세 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썼지만 내용은 결코 간단치 않다.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수십, 수백년 역사를 두고 칡넝쿨처럼 얽혀 온 각국의 애증관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제목 ‘크레바스(Crevasse)’는 빙하 표면에 생긴 좁고 깊은 틈을 의미한다. 빙하지대를 탐험하는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크레바스에 빠져 곤경에 처하는 것처럼, 어쩌면 한국이 국제무대의 ‘외교적 크레바스’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강희찬 지음. 메디치 펴냄. 1만4500원.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