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을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은 26.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1위인 네덜란드가 66.1%니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세계가치관조사협회(WVSA)가 발표한 2010~2014년 조사결과다. 기업 신뢰도 역시 마찬가지다. 글로벌 홍보회사 에델만(Edelman) 조사에 따르면, 우리 기업 신뢰도는 지난해 39%에서 36%로 낮아져 주요 27개 조사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기업 신뢰도 하락은 통신 분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국제기구나 해외 통신요금 비교에서 우수한 순위를 보이면 으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따라온다.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잠잠해졌지만, 통신시장 하면 으레 보조금 싸움을 떠올렸던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신뢰가 낮으니, 아무리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해도 부정적 인식을 좀처럼 바꾸기 어렵다.
이러한 반응에 통신사는 서운함을 느낄 듯하다. 여러 측면에서 통신 분야가 긍정적 기여를 많이 해왔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 우리나라 통신망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영국의 시장조사기관, 오픈시그널(OpenSignal)의 지난 6월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4세대 LTE 커버리지는 95%로 35개 비교국가 중 1위다. 새로운 세대의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를 앞당겨 온 결과다.
우수한 우리 통신환경은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모바일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배달이나 부동산 중개 서비스가 가능할 정도로 생활과 밀접해졌다.
2017년이면 종이통장 발행이 중지될 정도로 모바일로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은 일상적이다. 달리는 지하철에서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나라는 흔치 않다.
서비스 경쟁과 기술 개발로 통신요금 역시 지속적으로 내려갔다. 기본료 인하나 단계적인 가입비 폐지, 최근 선택형 요금제나 데이터 중심 요금제까지 통신비 경감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7월 발표된 OECD나 일본 총무성 통신요금 비교에서 순위가 개선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통신사는 디지털 생태계 상생 발전에도 노력했다. IT벤처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오고 있는 코리아IT펀드(KIF)가 대표적이다. KIF는 지난 2003년 통신사가 3000억원을 출자해 만든 민간 IT전문펀드다. 그동안 벤처기업에 600건이 넘는 투자를 해왔고 이 중 50여개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됐다.
지난해부터는 실패한 창업자 재도전을 지원하는 펀드도 조성해 벤처 생태계 선순환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통신사의 신뢰도는 높지 않은 것 같다. 영국 모바일 경제전문 연구소 인라이튼먼트 이코노믹스(Enlightenment Economics)를 설립한 다이안 코일은 불신의 비용을 언급하며 불신은 경제 성장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규제를 낳고 투자를 꺼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불신은 장기적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게 한다고 했다. 신뢰 없이는 단기적인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통신사가 처한 상황은 불신의 비용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규제 수위가 높아지고, 장기적 투자보다는 단기적 요금인하 요구에 시달린다. 시간이 갈수록 불신의 비용은 점점 쌓여갈 것이다. 이는 통신사에 부담이고 디지털 생태계와 소비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통신사는 신뢰 회복 시급성을 상기하고, 소비자와 소통을 확대해 가야 할 것이다. 소비자 눈높이에서 서비스를 고민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울러 소비자도 불신의 시선을 거두고 통신이 건전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격려와 비판을 해주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더 나은 통신 서비스 환경을 누릴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설정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부회장 12jss@ktoa.or.kr